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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Travel/이집트:Egypt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지중해와 대도서관의 추억

2006년도에 다녀왔던 이집트. 벌써 10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지금이야 중동지방 정세가 워낙 불안한지라 관광지로서의 이집트가 갖는 위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이집트는 해외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끝판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 보스 정도의 위엄은 갖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행 좀 한다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중국, 일본은 초급 지역, 동남아는 중급 지역, 유럽 각국은 상급 구역이라는 느낌이었다면 이집트는 그런 '기본 코스'는 다 경험하고 여행 관록이 좀 쌓인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었달까요. 실제로 저와 함께 패키지 여행을 했던 일행들은 다들 여권에 대여섯개 나라의 도장은 기본적으로 찍혀있더라구요. 물론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를 포함하는 '성지순례' 관광도 인기가 있었지만 이건 뭐랄까 기독교 교인 분들의 종교적 여행 코스인지라 일반적인 여행과는 좀 거리가 있었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중국 여행 한 번 가보고 불이 붙어서 이제 막 돌아다니기 시작한 제가 가기엔 상당히 벅찬 목표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펄 벅의 소설, '연인 서태후'와 베이징의 이화원 여행을 연결시키며 느꼈던 그 감동이 워낙 강렬했던지라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와 이집트 여행이 연결되면 어떨지에 대한 기대감이 결국 이 여행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계속 고민했던 것은 이집트와 서유럽 탐방 중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였습니다. 결국 이집트가 최종 낙점되는데는 여정과 자금이라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죠. 우선 해외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인 자금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북경 여행을 마치고 나서 '이건 좀 뜨겠다'싶어서 투자한 여행 관련주가 대폭 상승한 덕에 여유가 좀 생긴 상황이었습니다. 완전 대박은 아니고, 딱 이집트 여행 다녀올 정도의 돈이 생겼더군요. 여기에 좀 더 보태면 유럽도 가능했지만, 뭐랄까 뜻밖의 행운이 가져다 준 만큼만 딱 맞춰서 쓰고 싶었달까요.

둘째로는 여정. 제한된 일정에 맞춰 최대한 많은 것을 보는 게 여행에 있어서 투자 대비 효용성이 높은 건 사실입니다만, 너무 많은 곳을 한 번에 돌아보는 건 소화도 되기 전에 음식을 또 밀어넣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그 짧은 북경 여행에서도 여행사 패키지를 통해 편하게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서는 지쳐서 여행을 마음껏 즐기지는 못했던지라, 기껏해야 일주일에서 열흘 동안 대여섯 개 국가를 돌고 오면 감상이고 추억이고 다 섞여버릴 것 같더군요. 그래서 깔끔하게 짧은 기간 동안 두바이 당일치기 스탑오버를 제외하면 온전히 이집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정을 선택했습니다. 


이집트 패키지 여행도 여러 종류가 있었지만, 대도서관을 보고 싶다는 일념하에 알렉산드리아가 포함된 패키지를 선택했습니다. 사실 알렉산드리아는 별로 볼 것이 없는 동네인지라 보통은 카이로에서 시작하는 여행 일정을 주로 선택하지만 세계의 도서관 역사를 공부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 도시는 그야말로 문명의 성지.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길 가의 집들을 구경합니다. 집들도 미묘하게 다른 모양이고, 야자수가 가로수로 늘어서 있고... 중국 여행때와는 다르게 '외국에 왔구나'라는 사실이 실감나는 풍경이랄까요.


하지만 그런 말랑말랑한 느낌의 이국적 풍경은 알렉산드리아 시내로 접어들면서 박살납니다. 분명히 큰 길인데, 차량 수를 보면 번화한 시내의 주요 교통로인데... 난장판입니다. 난폭운전과 교통 체증이 서울의 심각한 문제라지만 이집트에는 명함도 못 내밀 수준.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집트 도로에는 없는 것이 세 가지 있으니, 바로 교통경찰과 신호등, 그리고 건널목. 괜히 가이드 말 안듣고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사고 나면 안되겠기에 어느 정도는 과장이 섞인 말이겠지만 교통 사정이 열악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자동차들은 유럽에서 넘어온 중고차들이라 성능도 시원찮은데 뻑하면 고장나고, 도로 통제는 거의 되지 않고...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통사고 통계로 보면 사고율이 상당히 낮다는 점일 겁니다. 그런데 이게 시민의식이나 준법정신이 선진화되어서 사고가 안 나는 게 아니라, 어차피 경찰 부르고 소송 걸어봤자 너도 돈 없고 나도 돈 없는 걸 아는지라 가벼운 접촉사고는 욕이나 걸판지게 하고 넘어가고, 좀 큰 사고가 나면 운전자들이 내려서 주먹다짐이나 하고 끝내기 때문이라더군요. 누구 하나 죽어나가야 교통사고 통계에 집계되는 무서운 동네. 

 

교통 정체로 차는 막히고, 그 와중에 버스 창가로 보이는 길가에는 노천 카페에서 물담배 피는 동네 아저씨들이 앉아있습니다.

이집트인이라고 하면 왠지 눈 가에 길게 화장도 하고 팔다리 90도로 꺾어가며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하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슬람 국가인 오늘날의 이집트는 낭만적인 여러 신들을 모시던 고대 이집트와는 완전히 단절되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상상을 해보자면 우리 나라가 완전히 독실한 100%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데 다른 먹고 살 길이 없어서 고려시대 불교 유적 보러 오는 관광객 대상으로 장사하는 느낌이랄까요. 


해변 도로를 따라서 가다 보면 보이는 알렉산드리아 시내의 모습입니다. 

다른 정복왕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알렉산더 대왕은 상당히 나르시스트 기질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자기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는 거. 그것도 수십 개 씩이나 말이죠. 헬레니즘 시대의 사람들은 헷갈려서 어떻게 살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자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길입니다" "나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오는 길일세" "그런데 이 길이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길 맞나요?" "그럼. 그리고 이 옆길도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길이지." 무슨 만담 같네요.

하지만 그 수많은 알렉산드리아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입니다. 나일강 삼각주의 북쪽 끝에 위치한, 지중해와 접해있는 거대한 항구도시.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중 하나인 프톨레마이오스가 이 도시를 수도로 정하고 부흥시키면서 오랜 세월동안 알렉산드리아는 유럽에서 이집트로 넘어가는 관문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해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잠시 멈춘 곳,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전경입니다. 일행들은 대부분 '도서관에는 뜬금없이 왜 왔나'라는 표정이지만, 제게 있어서 이곳은 피라미드와 함께 이 여행의 양대 목적지 중 하나. 보는 사람만 없었으면 땅에 입맞추고 건물에 절했을지도 모를 정도로 감동의 순간이었죠. 

앞서 말했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이 야심차게 건립했던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나중에 그 장서 수가 수십만권에 달할 정도였습니다. 요즘도 우리나라 대학 도서관들은 장서 수가 백만권 넘으면 플랜카드 걸어가며 자축을 하는 판인데 그 옛날 파피루스에 손으로 일일히 베껴가며 모은 책이 수십만 권이라는 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미친 규모였지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들은 다들 도서관 덕후들이었는지, 알렉산드리아를 지나가는 선박을 검문해서 책이 있으면 일단 압수해서 베껴 쓴 다음 원본은 자기네가 갖고 복사본을 주인에게 돌려주는가 하면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온 다음 벌금을 내고 책을 꿀꺽해버리는 수법까지 쓰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어떤 사람들은 도서관에 절판 서적이 비치되어 있으면 빌려간 다음 분실신고 하고 책을 자신이 소장하는 수법을 쓴다던데 그 수법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지요.

게다가 클레오파트라 여왕 시절에는 애인이었던 안토니우스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페르가몬 도서관의 장서를 몽땅 약탈해서 여왕에게 선물합니다. 도서관끼리의 경쟁이라고 하니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당시의 도서 수집 경쟁은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의 군비 경쟁 이상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이집트가 장서 수집의 라이벌인 페르가몬 왕국을 물먹이기 위해서 파피루스 수출 금지령을 내리고, 파피루스를 대신할 물건을 찾아헤매던 페르가몬 도서관에서 결국 양피지를 발명해 낼 정도였으니까요.

그 결과 수많은 학자들이 이 도서관을 이용했고,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은 오랜 기간동안 세계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불에 잘 타는 책을 모아놓은 장소답게 전쟁이 일어났다 하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마지막에는 이슬람 군대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면서 완전히 파괴되었죠. 그 당시 일화가 유명한데, 부하들이 점령군 사령관인 아무르에게 "도서관의 책들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물어보자 "그 책들이 코란의 가르침에 부합한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갖고 있으니 필요 없고, 코란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면 없애버려야 할 물건들이다"라고 대답했다죠. 한마디로 싸그리 불태우라는 명령. 

그래서 오랜 세월동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폐허로 남아있었습니다. 이집트 정부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다시 세우기 위해 유네스코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원조를 받았고, 그 결과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재건축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리는 그 자리인데 내용물은 간 곳 없으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을 뿐입니다. 그 옛날 세계 문명의 선도자 역할을 하던 도서관은 지금은 다른 나라에서 기부한 책에 의존하는 신세가 되었으니까요. 그나마도 이집트 정권의 검열에 의해 제 구실을 못하고, 외국인에게는 엄청나게 비싼 이용료를 받아먹으며 욕을 먹는 중.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감동과 안타까움을 남긴 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뒤로 하고 다시 이동합니다.

해안도로에서 본 지중해의 모습. 이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지중해. 서양 세계의 역사가 이루어진 바다. 대항해 시대 게임을 하며 갤리선 타고 주구장창 건넜던 바다. 이 바다를 건너면 유렵이 나오는 거겠지...라며 감상에 빠집니다. 생각해보면 웃긴 짓이죠. 서양인이 인천 앞바다에서 '이 바다 너머엔 중국이 있구나'라며 감상에 빠지는 꼴이니까요. 


아저씨들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왠지 한강변에서 낚시하는 아저씨들 모습이 겹치면서 묘한 곳에서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알렉산드리아 구경을 다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일몰을 배경으로 창 밖을 보고 있노라니 구멍이 뽕뽕 뚫린 하얀 기둥들이 자주 보입니다. 크기도 다양하고, 어떤 건 들판 위에 세워져 있고, 또 어떤 건 가정집 위에 세워져 있길래 저게 뭔가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비둘기 집이라네요. 한국 사람들 치킨 먹듯이 이집트 사람들은 비둘기 고기를 즐기는데 바로 그런 식용 비둘기를 기르는 둥지입니다. 어쩌면 피라미드 못지않게 이집트스러운 건축물일지도. 

다음 목적지는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 피라미드로 유명한 도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이집트다운 이집트 여행이 시작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