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경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두바이가 어디 붙어있는 도시인지는 몰라도 세계의 기름값 기준이 두바이유, 텍사스 중질유, 북해 브렌트유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가 수도인 워싱턴 D.C가 아닌 뉴욕이듯이, 아랍 에미리트 연방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수도인 아부다비가 아니라 두바이입니다.
막상 두바이에서 뽑아내는 석유의 양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만, 최적의 입지조건과 잘 개발된 항구 시설 덕에 아랍 에미리트는 물론이고 전 중동지방의 석유가 두바이를 통해 세계로 수출되지요. 검은 황금이 가져다 준 부는 엄청난 것이어서, 황량한 사막의 도시가 천국의 오아시스로 탈바꿈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저녁 무렵 도착해서 스탑오버 당일치기로 돌아보는 두바이인지라 그 화려함을 깊이있게 만끽하지는 못하지만, 거리의 모습과 쇼윈도우의 상품들만 봐도 흔히들 말하는 '중동 석유부자'의 힘이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즐긴 것은 유람선. 비록 강은 없지만 두바이 시내까지 이어지는 작은 만이 있는지라, 그 위에서 중동지방 전통 나무배를 타고 한바퀴 돌며 시내 야경을 감상합니다. 밤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진을 찍다보니 건질만한 게 별로 없는데, 그나마 괜찮은 사진엔 롤렉스 건물이 떡 하니 보이네요. 워낙 잘 사는 나라여서 그런지 명품 시계 구입하는 사람도 많은 듯 합니다.
다음으로 들른 곳은 두바이에서도 유명한 금시장. 우리나라로 치면 종로 귀금속 상가 거리 쯤 될 듯 합니다.
온 몸을 검은색 차도르로 둘러싼 여인들이 장신구 가게 앞에서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중동 국가 중에서는 그래도 개방적이라는 평을 받는 아랍 에미리트답게 니캅(눈만 보이는 옷)이나 부르카(얼굴도 망사로 가린 옷)가 아니라 차도르(얼굴은 개방된 옷)을 입고 있네요.
도대체 겉으로 보여주지도 못할 금붙이를 왜 살까 의아하기도 하지만, 저렇게 온 몸을 검은 색 천으로 감싸고 있는 여인들이 집 안에서는 엄청 화려한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사교 모임이나 친구들과 만나면서 보여주기 위한 거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또 하나 예상밖으로 잘 팔리는 것이 섹시하고 화려한 란제리. 왕족이 아니고서야 패션 센스를 자랑할 길이 없는 여인들이라 그런지 두바이에서는 명품 속옷 또한 엄청난 규모로 팔려나갑니다. 하긴, 생각해보면 섹시한 춤의 대명사인 밸리댄스 역시 중동지방에서 비롯되었지요.
황금 싫어하는 사람 없다지만, 중동 지방 사람들은 특히나 황금에 대한 사랑이 넘쳐납니다. 돈 쓰자고 들자면 더 비싼 보석들도 많지만 그보다는 금을 더 선호합니다. 그야말로 검은 황금을 진짜 황금으로 바꾸는 모습을 보여주지요.
그래서인지 쇼윈도우를 보면 보석을 치렁치렁하게 매달기보다는 황금을 주로 사용하면서 세공을 아름답게 한 장신구들이 대세를 이룹니다. 금이 비싸긴 해도 흔한 귀금속인지라 세계 어디를 가도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만, 아라비아 특유의 분위기가 흠뻑 묻어나는 금 세공품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일행들의 모습을 보며 느낀 건데, 아내나 여자친구와 함께 오기엔 영 좋지 않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두바이가 워낙 잘 사는 나라다보니 금값도 비싼데, 합리적인 소비를 하려고 드는 남자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순도의 금을 한국보다 더 비싸게 주고 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여자의 심정은 또 그렇지가 않으니, 서울 시내 다 뒤져봐도 저런 디자인의 금 목걸이를 구할수는 없다는 것을 알기에, 온 김에 하나 장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양입니다.
시내 번화가에 위치한 주메이라 모스크. 원래 주메이라는 동네 이름인데, 두바이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나라 전체에서도 손꼽는 부자 동네로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고급스러움을 나타내기 위해 주메이라라는 이름을 붙이는 곳도 많다고 하더군요. 주메이라 호텔이나 주메이라 쇼핑몰 등.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이나 청담동을 상호명에 붙이는 느낌일까요.
주메이라 모스크는 두바이를 대표하는 이슬람 사원이지만, 동시에 이교도에게도 열린 사원입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투어 코스가 있는데,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기 전에 지켜야 할 것들이나 기도하는 법 등 직접 접하지 못했던 종교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바이의 상징이라면 역시 버즈 알 아랍. 돛단배 모양을 본 뜬 최고급 호텔입니다.
여행 할 당시만 해도 초고층 빌딩인 부르즈 할리파가 완공되기 전인지라 명실상부 두바이의 유일한 랜드마크 건축물이었죠.
국내에서는 7성급 호텔이니, 한 번 자는데 최소 150만원 이상이니 하는 말로 더 유명한 곳이기도 합니다. 사실 공식적인 호텔 등급은 5성까지밖에 없습니다만.
숙박객이나 레스토랑 이용객 외에는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풀밭에 앉아 가이드가 가져다 준 도시락을 먹으며 겉모습만 구경을 합니다.
호텔에 비치는 조명이 천천히 색깔을 바꿔가는 모습이 아름답네요.
두바이 왕실에서 '석유 수출항으로 먹고 사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산업의 다각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여러가지 투자를 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금융업과 관광업입니다.
버즈 알 아랍은 시작에 불과하고, 미션 임파서블 영화에도 등장한 초고층 건물인 부르즈 할리파, 그리고 바다에 모래를 쏟아부어 만든 나무 모양의 인공섬인 팜 주메이라까지. 인공섬은 만들어보니 맛들렸는지 더 큰 규모의 야자수 모양 인공섬인 팜 제벨알리와 세계 지도를 본따 만든 더 월드까지 후속으로 건설중입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뭐랄까, 유럽이나 미국 관광객들이 그 좋은 남태평양 섬들 놔두고 굳이 사막에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섬에 와서 관광을 하려고 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에미리트 쇼핑몰도 한 번 들러봅니다. 뒤쪽에 서 있는 버즈 알 아랍의 위용이 느껴지네요.
호텔 위쪽에 둥글게 돌출된 부분은 헬리패드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테니스장이라고 합니다. 저 높은 곳에서 테니스를 치면 무서워서 운동이나 할 수 있을런지...
두바이를 돌아다니며 느끼는 건데, 기름이 나는 나라라서 그런지 화력발전소도 아낌없이 돌리는 듯 합니다. 사방팔방에 조명이 환해서 그야말로 낮과 밤을 따로 구분하기 힘들 정도.
대형 아울렛을 구경해본 적이 없던지라 이렇게 큰 건물이 몽땅 상점가라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조그만 마을이라고 해도 될만한 넓이에 여러 상점들이 다양한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봤던 중동 지방 특유의 상품들의 엄청 고급화 되어서 두바이 상점 진열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미 여행 막바지인지라 여행 경비가 남는 게 없었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이것 저것 또 충동구매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검은 황금이 이루어낸 기적, 사막 한가운데 스키장. 모래 썰매가 아니라 진짜 눈 위에서 타는 스키장입니다.
비록 실내 스키장이고, 눈 역시 인공 제설기가 만들어 낸 것이긴 하지만 세계 최대의 실내 스키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나름 상당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설물을 보니 사람의 편의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넘치는 돈을 주체할 수 없어서 흥청망청 쓰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합니다.
두바이 투어를 마치고 야경을 보며 잠시 쉬며 생각해 봅니다.
확실히 석유의 힘은 대단해서 나라 전체에 돈을 퍼부을 수 있을 정도로 벌어들이고, 아랍 에미리트의 일인당 GDP는 무려 4만불이 넘는데다가 (2006년 기준. 당시 한국의 일인당 GDP는 처음으로 2만불을 돌파), 일반 가정에서도 일하는 사람 두세명씩 부려가며 살 정도로 부유한 국가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인광석 팔아서 집집마다 벤츠를 굴리던 나우루 섬 주민들이 자원이 고갈되자마자 하루 아침에 거지가 되어버린 일이 이상하게 오버랩 됩니다. 물론 석유가 세계 시장에서 갖는 비중은 인광석보다 훨씬 크지만, 하늘을 찌를듯한 빌딩을 세우고 사막에 스키장 짓고 바다에 섬을 만드는 걸 보고 있자니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속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몇년 뒤 불어닥친 두바이 경제위기는 국가 부도 위기까지 언급될 정도였고 신문에서는 이를 두고 '고층건물의 저주'라는 기사를 내기도 했지요. 그리고 좀 회복하는가 싶더니 이번엔 미국의 셰일가스 시추로 인해 국제유가가 반토막나며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부자가 가난해지는 것은 가난한 사람이 좀 더 가난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이라고 했던가요. 앞으로 두바이가 어찌 될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어쨌거나, 만고에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더니, 괜히 중동지방 기름부자들 돈 쓰는 걸 걱정하고 앉아있네...라는 생각을 하며 공항으로 이동합니다.
이렇게 일주일간의 이집트+두바이 여행이 막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는 이제 막 타오르기 시작한 불에 기름을 뿌린 꼴이었으니... 이야기로만 듣던 장소를 직접 경험해 보겠다는 열망은 더욱 커져서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만듭니다. 이 때만 해도 막연한 의욕 뿐이었지, 정말로 6개월 뒤에 앙코르와트로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