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식사를 하러 갑니다. 간단한 뷔페식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인데, 메인 요리는 내가 원하는 대로 조합해서 먹을 수 있는 쌀국수입니다.
면과 고기, 채소, 달걀 등을 원하는대로 그릇에 담아서 놓아두면 육수를 붓고 순식간에 끓여서 줍니다.
원래 면 요리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동남아에서 먹는 쌀국수는 왠지 이국적인 향취 때문인지 아니면 다들 국수를 많이 먹으니 맛없게 만들면 금방 망해서 그런지 매 끼니 먹을 때마다 맛있다고 감탄하며 먹게 됩니다.
배를 든든히 채우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아름답다고 일컬어지는 반데스레이 사원, 일명 여인들의 성채입니다.
규모로 보면 다른 사원들에 비해 비교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작은 곳이지만, 담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보게 되는 아름다운 조각들은 그 크기를 잊게 만들어 줍니다.
그 무늬가 너무나도 정교하고 아름다워서 남자들이 망치와 끌로 조각한 게 아니라 여인들이 바늘로 조각했을 거라는 뜻에서 여인들의 성채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반데스레이 사원 내부 전경.
붉은 사암으로 건물을 세우고 조각을 했는데 보고 있노라면 돌이 아니라 나무에 조각해 놓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건물 전체가 세밀한 무늬로 가득합니다.
꽃무늬가 들어간 지붕. 워낙 세밀한 조각이라 사진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아름다움을 다 담아내는 게 불가능합니다.
사원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 높이 솟은 나무 한그루.
얼핏 보면 사원 안에서 자라나는 것 같지만 워낙 커서 착시현상이 일어나서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다행히도 담장 밖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반데스레이도 타프롬처럼 나무들의 습격을 받았다면 굉장히 안타까울 뻔 했습니다. 워낙 세밀한 조각들이라 조금만 손상되어도 복구가 불가능 할 것처럼 보이는 예술품들이 가득하니까요.
사원 벽면에는 꽃이나 신화의 내용을 새겨놓은 것도 많지만 이렇게 여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석상들도 있습니다.
'인간의 조건'의 저자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가 이 석상에 반해서 통채로 떼어가려다가 잡혀서 되돌려 놨다는 일화는 가이드들이 단골 소재로 써먹는 이야기입니다.
뭐, 실제로는 프랑스 박물관에 팔아먹으려고 훔친 거고, 비록 반데스레이 석상은 실패했지만 고고학 조사를 핑계로 꽤 많은 캄보디아 예술품들을 프랑스로 빼돌리는 데 성공하면서 나름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사실 프랑스와 영국이 세계를 나눠먹던 시절에는 다른 나라 문화유산을 '학술적 조사'라는 명목하에 자국으로 반출하는 일이 워낙 빈번했던지라 앙드레 말로 본인은 "이게 불법인 줄 몰랐다"고 항변했다는 말도 있구요. 하긴 이집트에서 스핑크스와 오벨리스크도 떼어가는 판국에 동남아시아 후진국의 석상 쯤이야 하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겠죠.
우리나라 직지심경도 프랑스로 끌려갔다가 2011년에 영구 임대 형식으로 겨우 돌아온 걸 생각하면, 영국과 프랑스의 문화를 구성하는 데 상당 부분은 남의 나라 약탈품이 기여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크메르의 보석이라고도 불리는 반데스레이.
장엄하고 호쾌한 느낌은 없지만 정교하고 세밀한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다른 어떤 앙코르 유적도 따라오기 힘든 곳입니다.
빛의 각도에 따라 조각의 그림자가 바뀌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봐야 그 입체감과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기에, 사진 찍는 내내 '아.. 참 사진빨 안 받는다'라고 한탄하며 찍었다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요즘 나오는 3D 카메라로 찍으면 좀 나으려나요.
아쉬움은 남지만 구경할 곳이 많은데 시간은 적은 관계로 발걸음을 옮겨 다음 장소로 이동합니다.
사원 입구에서 야자열매를 팔길래 목도 마르겠다 하나 구입해 봤습니다.
손도끼로 끝 부분을 몇 번 탁탁 치니까 물이 들어있는 속살이 드러납니다. 맛은 뭐 그냥 밍밍하지만 워낙 더운 날씨인지라 수분 보충 차원에서 달게 마셔줍니다.
속살도 조금 떼어서 먹어보니 아작아작 씹히면서 고소한 게 간식거리로 좋을 듯 한데... 아쉽게도 딱딱한 속을 파먹을 만한 도구가 없는 관계로 쉽게 떨어지는 끄트머리 부분만 조금 맛봅니다. 아깝다고 이 무거운 걸 계속 짊어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앙코르와트. 원래 힌두교 사원으로 건축되었다가 중간에 불교 양식이 가미된지라 입구에서부터 나가 석상이 손님들을 반겨줍니다.
머리 일곱 개 달린 뱀의 모습이 왠지 무섭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원의 수호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절로 치면 사천왕상이 입구에서부터 겁주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걸까요.
저 멀리 보이는 앙코르와트의 전경.
특이하게도 앙코르와트의 입구는 서쪽을 향해 있는데, 인도에서는 서쪽이 사후세계로 통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 곳이 왕의 무덤으로 건축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앙코르와트 포토존. 물에 비친 반영을 배경으로 앙코르와트 왔다는 증명사진 찍는 장소입니다.
가이드 잘 따라다니지 않으면 물기 많은 진창에 빠져서 신발 다 버리게 됩니다.
앙코르와트는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많이 달라 보입니다. 어떨 때는 붉은 색에 가까운 황갈색으로 보이다가도 또 다른 곳에서 보면 '내가 이걸 흑백사진 모드로 놓고 찍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채색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회랑 벽을 따라 관광객들이 벽화를 감상하며 돌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회랑 벽에는 여러 신화가 세세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컴퓨터로 Ctrl+C, Ctrl+V를 연달아 눌러 복사해도 손가락이 힘들어서 못할 것 같은 노가다의 결정판입니다.
줄다리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조각은 앙코르와트 회랑에서 가장 유명한 것으로, 힌두 신화의 창세 설화 중 한 장면인 유해교반 - 우유 바다를 휘젓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한 신들인 '데바'와 악한 신들인 '아수라'들이 끊임없이 싸우던 시절, 점점 약해지는 데바들은 비슈누 신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합니다. 비슈누 신은 우유의 바다에 약초를 넣고 휘저어 불사의 영약인 암리타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약해진 데바들만으로는 암리타를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수라들에게 영약을 나누어 주겠다고 거짓말을 하고 (선신 아니었어?) 뱀의 왕 아난타를 밧줄삼고 (동물학대) 수미산을 교반기삼아 (자연파괴) 천년동안 우유의 바다를 휘저어 암리타를 만들어 냅니다.
이 때 생겨난 우유 거품에서 압사라 요정들이 탄생했다고 하지요. 왠지 비너스의 탄생과 묘하게 겹치는 느낌도 듭니다. 결국 불사의 묘약을 만들어 내긴 했는데, 아수라들이 이를 들고 도망칩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예상되었던 일. 비슈누 신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해서 자신이 암리타를 더 많이 먹겠다며 싸우던 악신들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며 내분을 불러일으킵니다. 난리법석이 벌어진 사이에 암리타 병을 훔쳐서 데바들이 나누어 먹고, 세상은 평안해졌다는 해피 엔딩.
캄보디아의 국교는 불교이고,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 국기에 그려져 있을 정도로 상징성이 강한 사원입니다.
그래서 다른 곳을 돌아다닐 때는 편한 차림으로 다니더라도 이곳에서는 소매 있는 옷과 긴 바지를 입는 것이 좋습니다. 안 그러면 가장 높은 중앙 성소에는 올라갈 수도 없으니까요.
중앙 성소에서 바라본 탑의 꼭대기는 세밀한 조각들로 치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위를 올려다 본 모습보다는 돌로 만들어진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아래쪽 세상이 더 흥미롭습니다.
아직 개발되지 않은 주변 전경을 바라보며, 천년 전에 이 사원을 올랐던 사람들도 똑같은 풍경을 봤으리라는 생각을 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기분도 듭니다.
중앙 성소로 올라가는 계단. 일명 '천상으로 향하는 계단'입니다.
중앙 성소는 극락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렇게 가파른 계단을 지어 천국으로 올라가는 기분을 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당시만 해도 돌계단 본연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워낙 사고가 많이 일어나서인지 요즘 사진을 보면 보조 나무계단을 만들어 붙였더라구요.
안전사고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왠지 전통 그대로의 모습을 체험할 수 없다는 점에서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을 듯 합니다.
사실 앙코르와트는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래된 유적 중의 하나라는 점을 제외한다면 그렇게 크게 인상적인 부분은 없습니다.
밀림 속에 숨겨진 잊혀진 사원이라면 타프롬이고, 신비로운 석상이 가득한 사원이라면 바이욘이고, 세세한 조각의 아름다움이라면 반데스레이 사원입니다. 앙코르와트는 뭐랄까, 유명하긴 한데 가슴 깊이 감동을 주기에는 좀 부족하달까요.
이런 아쉬운 마음을 알아챈 건지, 돌아가는 길에 뒤돌아본 앙코르 와트는 비도 오지 않았는데 무지개를 띄우며 달래줍니다.
마지막 일정은 프놈바켕. 프놈바켕 사원은 씨엠립에서 가장 높은 산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 높이가 무려 67m. 670미터가 아니라 67미터입니다. 조그만 뒷동네 언덕 수준이지요. 이렇게 낮은 높이에도 불구하고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서인지 경치를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입니다.
등산로를 따라 직선으로 올라가면 10분이면 도착하고, 산 둘레를 빙빙 돌아서 올라가는 코끼리 트래킹을 이용해도 20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곳곳에 보이는 코끼리 전용도로 주의 표지판이 인상깊네요.
코끼리를 타고 설렁설렁 걸으면 마치 거인이 된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옛날 왕들 중에는 코끼리 타는 걸 좋아했던 사람들이 많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코끼리 학대 논란이 일면서 코끼리 트래킹을 보이콧하는 움직임도 일고 있는데... 코끼리 머리에서 피가 날 정도로 쇠꼬챙이로 찔러댄다고 하면 굉장히 끔찍하게 들리지만, 워낙 덩치가 큰 동물인 만큼 통제를 위해서는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자나 호랑이에게 죽는 사람보다 코끼리에게 깔려 죽는 사람이 더 많다던가요. 그렇다고 트래킹을 하지 않고 코끼리들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면 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인류와 함께 지구에 태어난 죄로 관광객들 태우고 다닐 것인지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인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거죠.
이러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류가 다른 모든 생명체를 (그리고 가끔은 같은 인류까지도) 일종의 자원으로 간주한다는 데서 나옵니다. 일부 자연보호 운동가들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을 동반자로 생각하지만, 전체 집단으로서의 인류와 사회 시스템은 동물을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보니까요. 좁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서 구경거리가 되는 건 양반이고, 종 전체가 멸종되는 것도 다반사,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좁은 우리에 갇혀 살만 찌우다가 도살되어 음식으로 변하는 기업형 축산사업에 이르러서는 코끼리 트래킹은 애교로 보일 지경입니다.
그렇다고 동물원을 다 폐쇄시키고 채식만 하라고 강요할 수 없는 게 우리 사회이다보니, 코끼리 보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들이 세상을 구한다고 믿고 있는 순진한 아이들을 보는 기분입니다. 애초에 사람이 써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차별대우 하는 건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부터 있었던 일이거든요.
"너는 모든 정결한(=먹을 수 있는)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먹을 수 없는)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 창세기 7장
그러다보니 '관광지에서 코끼리 타지 마세요'와 '마차 타지 마세요'와 '치킨 먹지 마세요'를 구분하는 게 왠지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최규석의 '사랑은 단백질'이라는 만화에도 나오듯이, 먹고 사는 건 결국 다른 생명의 희생 위에 서는 수밖에 없다고 하면 너무 냉소적인가요.
프놈바켕은 고지대의 특성상 아름다운 일몰로 유명한 유적지입니다만...
여기서 난생 처음으로 열대지방 스콜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 나더니, 몇 분 지나지 않아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의 폭우가 쏟아집니다.
일몰은 물 건너갔네요.
힌두 사원인 프놈바켕의 모습. 테라스가 겹겹이 쌓인, 일종의 피라미드형 사원입니다.
하지만 비가 너무 와서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결국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더 약오르는 건, 버스에 앉자마자 비가 뚝 그쳤다는 사실. 오분만 기다렸으면 일몰은 못봐도 최소한 옷이 다 젖지는 않았을텐데...
저녁 식사는 뷔페식과 쌀국수에 질린 중년 여행객들을 위해서인지 한국식 식당에서 불고기 백반을 먹습니다.
한국 백반집에서 먹는 것과 큰 차이가 없기에 별로 기억에 남는 것이 많지는 않네요. 정원에서 악어를 기르고 있었다는 점이나, 돼지갈비에 살이 별로 안 붙어있었다는 점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2차로 북한에서 운영하는 평양랭면 전문점으로 들어가 앙코르 맥주와 냉면을 먹습니다.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해외에 몇 군데 있는데, 캄보디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어여쁜 여종업원들이 노래도 부르고 가야금도 타는 등 공연을 보여주는 가운데 오리지널 평양랭면의 맛을 봅니다. 맛은 뭐... 심심합니다 -_-; 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은데다가 평양냉면이 원래 심심한 맛인지라...
아무래도 북한에서 운영하는 만큼, 종업원을 붙들고 '북핵 문제와 김일성 부자의 세습 독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같은 정치적 사안을 이야기하는 것은 진상짓으로 통하는 곳입니다. 관광객 입장에서야 그렇게 진상떨고 나오면 그만이지만 종업원 입장에서는 제대로 대처 못하고 어버버하다가 아오지 탄광으로 끌려갈수도 있는 노릇이니 아무래도 말을 좀 조심하게 됩니다.
워낙 이곳에서 탈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북한 김태희'로 유명한 여종업원도 여기서 일하다가 탈북했다고 하지요.
정말로 바쁜 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들어와 잠을 자려는데, 어디서 새소리 비슷한 게 들립니다. 아무리 들어봐도 방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라 어디서 나는 건지 계속 찾아다녔는데, 커튼을 들추니 그 뒤쪽 벽에 붙어있던 도마뱀이 모습을 보입니다.
찡쪽이라고 불리는 캄보디아 도마뱀인데, 모기같은 해충을 잡아먹으며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동물입니다. 우는 소리가 쫑쫑쫑하는 게 예쁜데다가 생긴 것도 귀여워서 왠지 한마리 데려오고 싶을 정도. 듣기로는 자다가 이 도마뱀이 머리에 떨어지면 길조로 여긴다는 말도 있는데, 워낙 피곤한 탓에 완전히 곯아떨어진지라 도마뱀 한무리가 머리에 떨어졌어도 세상 모르고 잤을 듯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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