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샌들러가 출연하는 영화 중에 "스팽글리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라티노 여성이 딸을 데리고 부유한 미국 가정집에 들어와 일하면서 겪게 되는 문화적 갈등과 가족간의 사랑을 다룬 영화인데, 여기서 아담 샌들러는 유명 레스토랑의 셰프로 등장하죠.
영화를 본 지 굉장히 오래된지라 대부분의 내용은 흐릿하지만, 그 중에서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니, 바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장면입니다. 밤 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주인공. 아내가 남긴 쪽지에는 좀 늦게 돌아올 거라는 메세지가 적혀 있습니다. 자유를 만끽하며 달걀을 굽고 빵을 얹어 샌드위치를 만듭니다. 한 손에 신문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네스 맥주를 따르는데 눈으로 보지 않고도 정확하게 맥주잔을 채웁니다. 그리고 자리에 앉아 샌드위치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한마디 합니다. "우~ 베이비"
불쌍하게도 가정부가 따지러 오는 바람에 한 입 먹어보지도 못하고 말다툼을 해야 하지만, 그 샌드위치를 만드는 예술적인 장면은 머릿속 깊숙히 남아 지워지질 않더군요.
레시피를 찾는 도중 알게 된 사실인데, 이 샌드위치의 이름이 바로 "세계 최고의 샌드위치 (The world's greatest sandwich)"입니다. 얼핏 들으면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광오하게까지 들릴 수도 있는 작명 센스죠.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이 레시피를 개발한 요리사가 토마스 켈러,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인 The French Laundry의 오너 셰프거든요. 완벽한 재현을 위해 셰프가 직접 아담 샌들러에게 샌드위치 만드는 법을 코치까지 해줬다고 하니 이 샌드위치 하나에 들어간 노력과 애정이 어마어마 한 걸 알 수 있습니다.
재료는 깜파뉴 빵, 베이컨, 몬테레이 잭 치즈, 달걀, 토마토, 양상추, 마요네즈가 들어갑니다.
깜빠뉴 빵을 적당한 두께로 잘라 몬테레이 잭 치즈를 듬뿍 얹어 오븐에 구워냅니다. 깜빠뉴 빵은 장발장이 훔쳤다가 감옥살이 한 빵으로 유명하죠. 엄청 큰 트럭 타이어만한 크기의 깜빠뉴 빵을 옆구리에 끼고 도망치는 장발장의 모습이 인터넷에 돌기도 했는데, 옛날에야 크게 구워서 많이 팔아먹어야 했으니 그랬다지만 요즘엔 가정에서 잘라먹기 좋은 크기로 구워서 팝니다.
치즈는 몬테레이 지방에 살던 잭이라는 사람이 만들어서 몬테레이 잭 치즈라고 하는데, 왠지 명천의 태서방이 잡은 물고기라 명태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막 녹아서 옆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듬뿍 올려서 구워주는 게 중요합니다. 나중에 이 빵을 뚜껑으로 덮으면 저 흘러내린 자국이 위로 올라가는데, 이게 또 숨은 포인트지요. 치즈가 노릇노릇해질 때까지 구워줍니다.
빵을 굽는 동안 달걀과 베이컨을 구워줍니다. 원래는 베이컨 먼저 굽고 거기서 나온 기름으로 달걀 후라이를 하곤 하는데, 오늘은 달걀부터 먼저 요리합니다.
베이컨 기름으로 구우면 아무래도 좀 타고 모양도 예쁘지 않게 나오더라구요.
달걀을 굽고 나서 베이컨도 구워줍니다. 두 줄에서 세 줄 정도면 적당합니다.
베이컨을 굽다 보면 처음엔 부드럽다가 나중엔 바삭바삭 해 지는데, 이게 미국에서는 엄청난 논란의 대상입니다. 베이컨을 부드럽게 구워 먹느냐, 바삭바삭하게 구워 먹느냐. 거의 우리나라의 탕수육 부먹찍먹에 버금가는 논쟁거리입니다.
전 부드러움에서 바삭함으로 넘어가는 딱 중간을 좋아하지만요.
빵에 마요네즈를 듬뿍 바르고 베이컨을 올립니다.
이 때 베이컨의 고기 부분과 지방 부분이 번갈아 가도록 순서를 바꿔가며 올리는 게 중요합니다.
안 그러면 한 쪽은 고기만 많고, 다른 한 쪽은 지방 부분만 많을 수 있기 때문이라나요.
양상추를 올리고 토마토를 잘라서 얹어줍니다.
달걀을 올리고 치즈를 얹어 구운 빵 한쪽을 뚜껑으로 덮어주면 완성!
반으로 잘라서 벌리면 노른자가 주루룩 흘러나오는 게 심금을 울립니다.
영화 보면서도 이 장면에서 얼마나 침을 꼴딱꼴딱 삼켰던지...
아담 샌들러처럼 기네스를 잔에 가득 따라서 샌드위치와 함께 먹습니다.
우~ 베이비.
맛은 그야말로 끝내줍니다. 짭잘한 베이컨이 들어가서 그런지 씁쓸한 흑맥주와 환상의 궁합을 보여줍니다.
가끔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내가 지금까지 이런 것도 모르고 인생 헛살았다'싶은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이 샌드위치도 그런 느낌입니다. 이렇게 맛있는 게 있는데 지금까지 못 먹은게 아까운 느낌이랄까요.
사실 몇 년 전에 세계 최고의 샌드위치를 따라해보겠다고 도전한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한국에 있을때라 얼치기 버전으로 만들었었죠. 깜빠뉴 대신 샌드위치 식빵에 일반 슬라이스 치즈, 베이컨 대신 스팸... 그렇게 만들어 놓고도 맛있다며 자화자찬하고 '오리지널에 비하면 백만광년까지는 아니고 오십만광년 쯤 거리가 있는 샌드위치'라고 생각했는데...
죄송합니다, 토마스 켈러 쉐프.
어떻게 보면 굉장히 흔한 샌드위치 조합인 BLT(베이컨Bacon, 양상추Lettuce, 토마토Tomato)의 변형 버전일 뿐이지만 사소한 차이들이 모여서 큰 발전을 만들어 냅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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