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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Travel/캄보디아:Cambodia

[캄보디아] 씨엠립, 앙코르의 후예들이 사는 오늘의 모습

찬란했던 캄보디아의 과거를 돌아보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이 나라의 근현대사가 갖는 아픈 기억을 살펴보고 오늘날 이 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알아보는 일정입니다.

가장 먼저 보게 된 곳은 지뢰 박물관. 70~80년대에 일어난 잦은 내전은 수많은 지뢰를 나라 곳곳에 매설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여기에 폭격 당시 폭발하지 않은 불발탄까지 합쳐서 어마어마한 수의 폭발물들이 아직도 땅 속에 묻혀 있거나 수풀 속에 함정처럼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뢰 매설 지도도 남아있지 않고, 비가 와서 유실되면 지뢰지대에서 어디로 흘러내려갈지 모르는 일이라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죠. 우리 나라에서도 휴전선 부근은 장마철 폭우 쏟아지고 나면 가끔 지뢰가 흘러나와 농부들에게 발견되곤 하는데, 캄보디아는 사정이 훨씬 더 심각합니다.

특히 이번 여행중에 지뢰에 의해 불구가 된 사람들이 관광지 앞에서 연주하는 모습을 봐서인지 확 실감이 됩니다. 국경이나 산간지역에서 근무하던 군인들 뿐 아니라 농사를 지으러 주요 도로에서 벗어난 농부, 강가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지뢰에 의해 피해를 입습니다.


군복무 시절에는 각종 부비트랩에 대해 이론적으로만 배우고, 교재로 만들어놓은 모형 지뢰만 주로 봤었는데 이렇게 인계철선 걸어서 실제로 숲 속에 설치해놓은 것을 보니 긴장을 풀었다가는 그대로 당하겠구나 생각합니다.

지뢰가 무서운 이유 중의 하나는 이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부상당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면 한 명분의 전투력이 손실되지만 부상을 입히면 그 사람을 부축하기 위해 최소 두세명 이상의 전투력이 손실되거든요. 그러다보니 지뢰 밟고 죽은 사람 못지않게 손이나 발을 잃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이게 완전히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닙니다. 나중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된다면, 휴전선 부근에 60년 넘게 쏟아부은 지뢰들이 만만치 않은 골칫거리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박물관 한쪽에는 해체된 지뢰의 파편들이 수북히 쌓여있습니다. 불발탄으로 다리를 세운 의자가 왠지 캄보디아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사실 지뢰나 불발탄을 발견하고 곧바로 인근 군부대에 신고해서 제거한다면 피해가 훨씬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캄보디아가 굉장히 가난한 나라라는 점이죠. 고철 주워다 파는 것으로 버는 수익을 무시할 수 없는 빈민들은 지뢰를 발견해도 전문 제거반을 부르는 게 아니라 어디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어설프게 해체해서 팔아보려다가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지뢰가 수많은 장애인을 만들어냈다면, 학살의 결과물인 킬링필드는 왓트마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공산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극단적인 농업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폴 포트의 정책을 요약하자면 "농부 외에는 다 필요없어" 정도로 줄일 수 있습니다. 도시에 살던 사람들을 강제로 시골로 이주시키고, 산업시설을 파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모조리 농부로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폴 포트가 모택동의 신봉자였던지라 중국이 저질렀던 희대의 삽질인 문화대혁명을 캄보디아에서도 재현해 보자는 심산이었지요.

그 과정에서 '머리에 먹물이 든 사람들은 농부로 교화시키기가 힘들다'는 판단이 서자, 모조리 죽입니다. 지식인, 자본주의자, 부유층, 구 정권 관련자 등을 모조리 학살하는데, 그 수가 자그마치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600만이었으니 국민의 3분의 1을 학살한 셈. 

수도였던 프놈펜에서 죽은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 유해를 묻은 장소를 킬링필드라고 부르는 것은 유명합니다. 그리고 씨엠립에서 학살당한 사람의 수도 만만치 않기에 왓트마이 사원에 모셔놓은 유해들을 일컬어 작은 킬링필드라고 하기도 하죠.

수많은 자료나 책보다, 사원에 안치된 희생자들의 유골이 학살의 결과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학교인지 병원인지 용도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데, 학살과 고문이 자행되었던 장소입니다. 건물 뿐만이 아니라 주변 논밭에서도 사람이 엄청나게 죽었다고 합니다. 요즘 사진을 보면 새로 페인트 칠을 해서 좀 나은데, 이 여행 당시만 해도 보수를 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던지라 그 더운 날씨에도 왠지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던 곳.

어떤 고문을 했는지, 어떻게 사람들을 처형했는지에 대한 사진 자료를 보고 있노라면 이건 뭐 아시아의 아우슈비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사람 머리 속을 들여다보고 지식인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가 없으니 고운 손을 갖고 있으면 사형, 안경을 끼고 있으면 사형...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원한에 차서 죽었으니 귀기가 서린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실제로도 주변에서 유령을 보거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들었다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그 넋을 달래기 위해 돈을 모아 바로 옆에 사원을 세웠을 정도.

6.25를 겪으며 빨갱이라고 죽이고, 반동분자라고 죽였던 동족상잔의 비극이 어떤 건지를 경험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아픈 기억을 되살리는 곳이기도 합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데 만난 돼지 한 마리.

어제 먹었던 돼지 갈비에 살이 별로 없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워낙 더운 날씨인데다가 가축을 풀어서 기르는 집이 많다보니 돼지도 운동량이 많아서 그런지 그닥 뚱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사진상으로는 그냥 귀여운 아기돼지인데 실제로 움직이는 걸 보면 빼빼 마른 느낌.


옵션 투어를 겸해서 들른 공방. 앙코르와트에서 봤던 벽화를 재현해서 기념품을 만드는 곳입니다.

사실 이건 좀 잘못 선택한 코스 아닌가 싶기도 한데, 여행을 다니면서 이 무거운 돌덩어리를 누가 들고 다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현지인 조각가들이 열심히 조각을 하고는 있는데, 별로 많이 팔리지는 않을 듯.


그보다는 공방 앞에서 알짱거리던 고양이가 귀여워서 함께 놀아준 게 더 기억에 남네요.

고양이도 날씨가 더워서인지 빼짝 말랐는데 종종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귀엽습니다.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일정은 톤레삽 호수에서 끝납니다.

길 가의 집들이 점점 공중누각 세우듯 기둥 위에 세워놓은 걸로 봐서는 우기때는 저 높이까지 물이 들어오나 봅니다.


호수 주변에서 물장구치며 노는 아이들. 관광객들 태운 배가 지나가면 저렇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줍니다.

하지만 이렇게 해맑게 웃는 아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어김없이 미소 뒤에 후렴구를 붙입니다. "원딸라! 원딸라!" 


2700제곱킬로미터가 넘는 크기의 호수라기에 확 트인 광활한 풍경을 생각했는데, 호수 초입에는 물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냥 골목길 지나가는 느낌입니다. 길 위를 걷는 게 아니라 호수 위를 배 타고 지나간다는 게 차이점이지만요.

흙탕물처럼 보이는 톤레삽 호수지만, 실제로 수질은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그냥 바가지로 떠서 하루 정도 가라앉혔다가 마신다고 합니다. 물론 관광객이 따라하다가는 단번에 설사에 복통을 호소하게 될 일입니다.


배를 타고 가다 진귀한 풍경을 보게 됩니다. 톤레삽 호수 수상가옥의 이사하는 날입니다.

집을 통채로 보트로 끌어다 옮깁니다. 저 큰 집이 조각배 하나에 묶여서 끌려다니는 게 재밌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렇게 쉽게 움직이면 나중에 고정은 어떻게 시키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수상가옥이라도 사람 사는 동네는 다 마찬가지인지 물 위에 떠 있는 상점도 있고, 그 옆에 묶인 보트에도 각종 물건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평소에는 집에서 물건을 팔다가 시간 정해놓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배에서 물건을 팔기도 하는 듯.

여기 사는 사람들은 보트가 자가용 대신입니다. 그리고 걷는 대신 수영을 하는 거죠.

뭍으로 나갈 일도 없어보이는 사람들이 그럼 뭘 먹고 사나 싶기도 한데, 주 업종은 어업입니다. 호수의 물고기를 잡아서 파는데, 워낙 많은 물고기가 잡히는지라 캄보디아 국민들의 훌륭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어줍니다.


호수쪽으로 나갈수록 수상가옥의 숫자는 점점 적어지고, 그 빈자리를 대신하듯 부레옥잠이 들어차기 시작합니다.

부레옥잠 하면 초등학교 생물시간에 해부 실습했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공기주머니를 반으로 갈라보기도 하고, 오염된 물 정화시키는 것도 관찰하고... 

보기에는 녹색이 가득한 게 예뻐보이는데, 실제로 사는 주민들 입장에서는 골칫거리입니다. 이상기후로 인해 유래가 없을 정도로 부레옥잠이 이상번식했는데, 이것 때문에 보트를 타고 이동하거나 물고기를 잡는게 힘들 정도가 된 거죠.


수평선 가득한 부레옥잠. 풀밭이 아니라 호수 위입니다.

정말 징그럽게 많이도 자랐습니다. 이렇게나 많으면 호수 수질 개선에 나름 도움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다가도, 막상 캄보디아 호수엔 특별히 오염원이랄만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하니 현지인들이 성가시게 여길만 하다고 느껴집니다.


넓은 호수 저편에서 뭔가 조그만게 둥실둥실 떠서 오는데, 가까이서 보니 고무 대야에 꼬마 아이가 타고 있습니다.

자기 키만한 나무 막대기로 노를 저으면서 일행이 타고 있는 보트로 다가오더니 어색하게 웃으면서 외칩니다. "원딸라!"

중년 여행객들은 짠한 마음이 들어서 돈푼이라도 쥐여주려고 하지만, 가이드가 했던 말이 있어서 간식거리나 좀 던져줍니다.

캄보디아가 워낙 못 사는 나라이다보니 어린 아이들이 관광객들에게 한두푼 얻어 오는 게 큰 수입원입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게 아니라 구걸하라고 길거리로 내보냅니다. 그리고 이건 악순환의 연속이 되죠. 이렇게 구걸하며 자란 아이들은 배운 게 없으니 또 자식들을 구걸하러 내보내고, 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이고...

사실 구걸하는 어린아이에게 적선을 베푸느냐 마느냐는 동남아에서 아프리카까지 후진국 어디를 가도 마주치게 되는 문제입니다. 돈을 주자니 계속 발전이 없을테고 안 주자니 불쌍하고... 좀 심한 경우엔 인신매매범들이 납치해서 앵벌이를 시키는 경우도 있고, 부모가 구걸 더 많이해오라고 자기 자식의 손을 잘라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설마 그렇게까지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인도 여행갔을 때 이상하게 한쪽 손만 잘린 채로 구걸하는 아이들이 엄청 많은 걸 보니 도시전설로 치부할 수가 없더군요.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 바다처럼 넓은 호수에서 김장 담글때나 쓸만한 고무 대야 타고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어린 아이들 역시 안전해 보이지는 않구요.

가이드들 말로는 차라리 필기도구 같은 걸 주는게 낫다고 합니다. 볼펜이나 수첩같은 걸 주면 그걸로 공부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어서 학용품 겸 장난감으로 쓸 수 있다나요. 전 그래서 그 이후로 여행 다닐 때는 모나미 볼펜을 넉넉하게 챙겨서 갖고다닙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부피도 얼마 차지하지 않으면서 못 사는 나라를 여행할 때 아이들에게 (가끔은 어른들에게도) 하나씩 나눠주면 좋은 선물이 되지요. 


톤레삽 호수까지 구경을 하고 다음 목적지인 베트남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폭우가 쏟아지면서 연착.

처음엔 30분 연착이라더니, 시간 거의 다 되니까 다시 40분 연착으로 바뀌고, 나중엔 90분 연착이라고 하다가 갑자기 도착합니다 -_-;

베트남 여행의 주 목적은 하롱베이의 빼어난 자연 경관을 보는 것인데, 이렇게 날씨가 안 좋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절로 듭니다.

실제로 비는 베트남에 도착해서 다음날까지 그치지 않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