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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Travel/베트남:Vietnam

[베트남]하롱베이, 여의주가 만들어낸 아름다운 섬들

베트남 여행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쌀국수로 배를 채우고 하롱베이의 아름다운 섬들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워낙 유명한 세계문화유산인지라 세계 곳곳에서 온 여행객들이 넘쳐납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을 태우기 위한 배들도 항구에 넘쳐나구요.

바다 안개가 잔뜩 끼는 바람에 제대로 구경할 수 있을까 좀 걱정이 되는데, 배 안에서 1박을 하고 항구에 돌아오는 사람들이 추위에 덜덜 떨면서 내리는 걸 보곤 구경이 문제가 아니구나 싶기도 합니다.


유람선이 출발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이렇게 과일과 생선 등을 실은 쪽배가 접근합니다.

생선은 가이드가 미리 예약해 둔 게 있어서 과일만 조금 삽니다.

동남아 지역은 과일이 무진장 싸고 맛있기 때문에 한국 돌아가기 전에 잔뜩 먹어두는 게 본전 뽑는 지름길입니다.

물론 관광지 물가는 아무래도 배낭여행하며 현지인 시장에서 사는 것보다야 비싸겠지만, 그 차액을 아끼기 위해 추가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일 필요가 있는지는 항상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물가가 싼 나라에서는 어이없는 수준의 바가지를 쓰는 것만 아니라면 물건값 깎는 데 에너지를 소모하는 게 더 손해인 경우가 많거든요. 

흥정 자체를 즐긴다면 모를까 한시간동안 발품팔고 십분동안 싸우듯이 흥정해서 깎은 금액이 천원이라면 차라리 그 돈 아끼지 말고 에너지를 아끼는 편이 낫다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여행경비'에 신경을 쓰지만 '시간'과 '체력' 역시 제한된 시간을 여행하는 관광객에게는 소중한 자원입니다. 


점점 더 섬들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물길 양쪽 가장자리에 물 위에 지은 집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롱베이의 수상가옥들은 단순한 집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수영장처럼 보이는 그물 칸막이도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배를 타고 나가 잡아온 물고기들을 칸막이 안에 산 채로 보관했다가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이 이 수상가옥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미리 예약해놓은 집에 들러서 가이드가 고르는 싱싱한 생선과 각종 해산물을 보는 자리에서 뜰채에 담아 건네받습니다.


아직 바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지 않아서 왠지 수묵화 느낌이 나는 풍경을 감상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서로 키스하는 것 처럼 붙어있는 바위섬을 지나 점점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면, 어느 새 점심시간이 다가오며 출출해집니다.


지금 막 건져낸 왕새우는 워낙 싱싱하고 크기가 커서, 별다른 요리를 하지 않고 쪄내기만 해도 그 맛이 일품입니다.

고소하고 달달하면서 탱글탱글 씹히는 맛에 계속 껍질 까며 주워먹고 있는데, 가이드가 너무 배를 채우지는 말라고 충고를 합니다.


오늘의 메인 요리, 다금바리 회.

제주도에서는 kg당 20만원이 넘는 고급 어종으로 유명하죠. 영화, '작업의 정석'에서는 손예진이 다금바리를 먹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송일국이 비싼 시계를 전당포에 맡겨가며 사주는 남자 주인공 역할을 연기하는 장면이 나오죠. 막상 회를 사주니 '회는 배불리 먹는 음식이 아니다'라며 두점 딱 먹고 다먹었다고 해버립니다만.

물론 지금 먹는 건 다금바리의 먼 사촌쯤 되는 베트남산 능성어고, 학술적으로 봤을 때나 이웃사촌이지 맛으로 따지자면 영덕대게와 러시아산 킹크랩이 갖는 차이보다도 거리가 멉니다. 실제로 제주도에서도 하루에 열마리 정도 잡히는 게 다금바리인지라 물량은 부족하고, 관광객들 뒷통수 칠 때 써먹는게 바로 이 베트남산 능성어입니다.

그래도 산지에서 좋은 경치를 보며 얼음판 위에 깔린 회를 먹고 있으니 짝퉁 다금바리라도 너무나 맛있습니다.


생선회로 배를 채우다보니 한템포 늦게 등장한 꽃게찜은 인기가 없습니다. 그래도 맛이나 보자고 다리 한쪽 뜯어서 발라먹는데, 어느 새 한마리가 껍질만 남더군요.

사실 이렇게 맛있게 먹긴 했지만 하롱베이에서 회를 먹을때는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다 생선의 내장에는 '고래회충'이라고 불리는 기생충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생선의 내장에서만 사는 기생충인데 숙주가 죽고 나면 '이대로 있다가는 같이 죽겠구나'라는 생각에 내장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생선 살 속으로 파고들고, 이걸 모르고 회를 먹으면 위를 파고드는 기생충으로 인해 끔찍한 복통과 구토 등에 시달리게 되는 거죠. 보통 죽은 지 서너시간이 지나면 벌레들이 내장을 벗어난다고 하니, 살아있는 생선을 바로 잡아서 뜬 회인지 확인하고 먹는 것이 좋습니다. 혹은 회뜨는 사람이 어설픈 칼질로 내장을 건드려서 기생충이 나오지는 않았는지도 조심해야 하구요. 


배가 부르니 한결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롱베이의 풍광을 감상합니다.

하롱은 말 그대로 용이 내려왔다는 뜻인데, 중국 해군이 베트남을 침략하러 오자 용이 나타나 여의주를 뿌려 배들을 침몰시켰다는 전설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 뿜어낸 여의주들이 변해서 생긴 것이 바로 이 하롱베이의 섬들이라고 하죠.

 

하롱베이는 바다와 섬이 만들어내는 경치 뿐 아니라 각종 동굴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중의 한 곳, 티엔꿍 (天宮: 천궁, 하늘궁전) 동굴을 구경하러 들어갑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산 중턱에 깊게 갈리진 틈이 바로 동굴 입구입니다.


동굴의 크기는 그리 넓지 않지만 화려한 종유석이 가득해서 눈요기를 하기엔 충분합니다.

색색의 조명을 비춰놓았는데, 처음에는 좀 유치한 거 아닌가 싶다가도 막상 사진빨 잘 나오는 걸 보니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갑니다.

이렇게 다양한 색깔의 조명이 아니었으면 아무래도 종유석의 입체감을 살리기 어려웠을 듯. 


커다란 커튼처럼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종유석도 있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종유석과 아래서부터 올라가는 석순이 만나 아예 돌기둥이 만들어진 곳도 있습니다. 


관광객을 위한 산책로를 잘 닦아놔서, 편한 길을 따라 설레설레 걸으면서 구경하다보면 어느 새 동굴을 한바퀴 다 돌게 됩니다. 

무엇보다 고마운 점은 동굴 특유의 서늘한 기운 덕에 약간 덥고 습하던 느낌이 싹 사라졌다는 거지요.


많은 수의 종유석과 석순들이 독특한 모양으로 자라고, 그 모양에 걸맞는 이름이나 전설이 붙어있습니다. 그 뒷이야기만 하나씩 들어도 시간이 금방 휙휙 지나갑니다. 

박쥐 모양, 촛대 모양, 노인의 얼굴 모양, 거북이 모양에 심지어는 남자 거시기 모양까지. 어떤 것은 설명도 듣기전에 딱 알아볼 정도로 명확한 모양인 반면, 어떤 것은 설명을 들어도 이게 왜 그런 이름이 붙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천궁동굴 입구에서 본 풍경. 섬 사이에 배들이 나란히 정박해 있는 게 왠지 개발되지 않은 항구를 보는 것 같습니다.


바다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하롱베이.

워낙 섬들이 많다보니 파도가 없고, 파도가 없다보니 포말이 일지 않아 바다 비린내가 없고, 비린내가 나지 않으니 갈매기가 없다고 해서 파도, 바다냄새, 갈매기를 하롱베이에서 볼 수 없는 세가지로 꼽습니다.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약 2천여개의 섬들이 모여 만든 하롱베이.

잔잔한 바다 위에 수없이 많은 섬들이 떠 있는 풍경은 다도해와는 또 다른 느낌을 줍니다.


회를 먹고 매운탕을 먹지 않으면 왠지 허전한 것이 한국 사람 마음인지라, 돌아가는 길에는 매콤하게 끓인 매운탕과 각종 음식으로 출출한 배를 채웁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을 실감하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잘 먹다보니 경치 구경이 핵심인지, 먹는 게 메인인지 분간이 가질 않을 정도입니다. 하긴, 조선시대 선비들도 천렵을 하며 좋은 풍경에 둘러싸여 물고기로 탕을 끓여 먹고 시를 읊었으니 구경하며 즐기는 것과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 아닌가 싶습니다.

Eat around the world. Travel around the world. 왠지 제 인스타그램에 써놓은 프로필이 딱 들어맞네요.   


거울처럼 잔잔한 해수면 위로 점점이 뿌려진 하롱베이의 섬들을 뒤로 하고 배를 돌립니다.

멀리서 보면 길게 이어진 하나의 해안선처럼 보이다가도 또 좀 자세히 보면 마치 수묵화처럼 원근감이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리고 그 조그만 섬 하나하나가 다 바위섬이 아니라 나무로 파랗게 뒤덮여 있는 것도 하롱베이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한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돌아가는 우리 일행의 배를 지나쳐서 하롱베이로 들어가는 유람선. 아마 늦은 오후에 들어가서 하룻밤 자고 나오는 코스인 듯 합니다.

독특한 모양의 배가 하롱베이를 배경으로 떠 있으니 마치 관광엽서에 쓰는 사진 같네요.


슬슬 가까워지는 선착장을 바라보며 뱃머리에 달린 용머리 조각을 밟고 서 봅니다.

다른 배에서 이렇게 서면 타이타닉의 한 장면 같겠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서니 무협지의 한 장면입니다.

강 위에서 무림 고수들이 싸울 때 대장들은 항상 용두선에 타곤 하지요. 장강수로십팔채의 해적 두목들이라던가... 


하롱베이에서 다시 하노이로 돌아갑니다. 곳곳에는 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논밭 한가운데 각양각색의 조그만 건축물들이 서 있는게 종종 보입니다. 저게 뭔가 물어보니 조상들 묘지를 저렇게 논 한가운데 모신다고 하네요. 이렇게 묘를 써야 조상신들이 농사가 잘 되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수맥은 반드시 피해야 하는 우리나라 매장법과는 달리 물이 가득한 논 한가운데 묘를 쓴다는 게 신기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쓰고 있는 것은 베트남의 전통 모자인 '논'입니다. 우리나라 시골총각들이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면 마을 사람들한테 돌리는 선물 일순위라나요. 하나 사서 써 봤는데 가벼우면서도 시원한 게 더운 지방 여행하기엔 좋습니다. '논에서 논을 쓰고 일은 안하고 논다니!'라는 아재 개그가 머리를 스쳐가지만, 입밖에 내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베트남에서 구입해서 진짜 오랫동안 잘 쓴 물건은 논이 아니라 피스 헬멧(pith helmet). 이른바 사파리 모자로 불리는 물건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군인 헬멧으로 사용된 탓인지 아직도 여기저기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인데, 단단하면서도 모험가 분위기가 나는지라 그 뒤로 여행갈 때는 꼭 쓰고 다녔지요.


다시 하노이로 돌아와서, 비행기 탈 때까지 시간이 좀 남은 관계로 수상인형극을 관람합니다.

베트남의 각종 신화나 전설 등을 보여주는 인형극입니다.


하노이 중심부에는 호안끼엠 호수가 있습니다. 옛날 베트남의 왕이 명나라와의 전쟁 때 사용하며 승리를 가져왔던 보검이 있는데, 왕이 호수 위를 지나가는데 거북이가 나타나 "이 검은 원래 하늘의 물건이니 이제 돌려줄 때가 되었다"며 가져갔다고 해서 검을 돌려준다는 뜻의 환검 호수가 되었습니다.


극장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인형사들이 장막 뒤에서 장대로 조종하는 인형극이다보니 이렇게 배를 타는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나중에 끝나고 인형사들이 나와 인사를 하는데, 다른 것보다도 물에서 저렇게 인형을 조종하자면 진짜 힘들겠구나 싶은 생각밖에 안 들더군요.


다시 밖으로 나오자 여전히 가득한 오토바이들.

공산주의에서 벗어나며 급격한 사회 변화를 이루던 베트남, 이제는 어떻게 변했을런지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아직 못 본 곳이 많은 관계로 베트남 재방문은 일단 뒤로 미뤄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