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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Travel/이집트:Egypt

[이집트] 룩소르, 죽은 파라오와 살아있는 신이 만나는 곳

가장 유명한 피라미드는 카이로에 있지만, 고대 이집트의 나머지 전부는 룩소르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테베라고 불리던 까마득히 먼 옛날부터 파라오들은 이 곳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자신도 언젠가 그들의 곁에 다가갈 수 있도록 기도했지요.

그러다보니 도시 전체가 거대한 유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볼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어나 여정을 시작합니다.

아침해와 함께 맞이하게 되는 첫번째 유물은 멤논의 거상. 아멘호테프 3세가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두 개의 거대한 석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멘호테프 3세의 거상이라고 불리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인들이 이 석상들의 모습이 트로이의 영웅인 멤논과 닮았다고 생각하고 주구장창 멤논의 거상이라는 애칭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설로는 그리스 여행자가 석상 옆에서 하룻밤을 자는데, 석상에서 울음소리를 듣고는 그 소리가 멤논의 어머니인 에오스의 울음소리와 비슷하다고 여겨서 이 석상이 멤논의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지요.

 

사실 그 울음소리는 석상에 생긴 균열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소리였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멤논의 거상에서 나는 울음소리를 들으면 행운이 온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그 덕에 석상 두 개 밖에 없는 이 장소가 유명한 관광지로 거듭나게 되었죠. 로마 황제가 그 소리를 들어보겠다고 방문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수천년의 세월을 한 자리에 앉아서 수많은 관광객들을 맞이한 멤논의 거상. 보수공사용 철골 구조물에 둘러싸여 아침해와 함께 떠오르는 관광객들의 열기구를 보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석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도리가 없었지만, 최소한 저는 '나도 저 열기구 한 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들더군요. 꽉꽉 채워넣은 패키지 여행 일정 상 반나절은 족히 잡아먹는다는 열기구 경험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그래도 하늘에서 보는 룩소르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이드는 얼마 전 열기구 추락사고로 관광객이 사망한 적도 있다며 겁을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멤논의 거상을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하트셉수트의 장제전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를 신의 대리자 내지는 반신으로 받들어 모셨고, 파라오가 죽은 뒤에는 완전히 신의 반열에 들어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파라오를 위해 지내는 제사는 단순히 죽은 왕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것과 같은 행위였지요.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장제전(mortuary temple)으로, 추모 공간과 신전을 겸한 다목적 건물이었습니다. 

초기 이집트 왕조에서는 무덤과 장제전을 같은 장소에 지었습니다. 밥 먹으러 멀리 나가는 것보다는 집까지 배달해 주는 게 좋으니까요. 실제로 피라미드를 보면 그 앞쪽에 장제전 건물이나 터가 남아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무덤을 왕가의 계곡에 짓기 시작하면서 장제전은 무덤과 거리가 떨어진 곳에 지을 수 밖에 없게 되었죠.  


많은 파라오의 장제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병풍처럼 펼쳐진 높은 절벽 가운데 커다란 장제전이 그 위용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인디아나 존스가 요르단의 페트라에서 촬영하지 않았으면 여기서 영화를 찍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암이 보여주는 특유의 색깔 때문인지, 개인적으로는 1센트 동전에 그려진 링컨 기념관이 자꾸 연상되기도 합니다.


관광객들을 감시하는 독수리의 눈. 독수리 머리의 신인 호루스는 이집트 신화에서 최고신의 아들인 관계로 여기저기서 인기가 많지요.

그 뒤로는 기둥앞에 서 있는 하트셉수트의 석상들이 보입니다. 똑같은 포즈의 똑같은 모습을 한 자신의 석상을 저렇게 줄줄이 세워놓고도 부끄럽지 않았다니,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미적 감각은 참 특이한 데가 있구나 싶습니다.

원래는 훨씬 더 많은 수의 석상이 있었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며 이교도들의 습격을 받아 하나씩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나마 조금은 남았으니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요.


하트셉수트 파라오의 모습. 남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왕이었습니다.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딸 하나만 낳은지라, 첩의 아들인 투드모세 3세가 성장할 때까지 섭정 겸 공동 파라오로 이집트를 통치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여성의 모습으로는 주변 국가들은 물론 국민들에게까지 무시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짜 턱수염을 달고 남자 행세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하트셉수트가 무려 20년 동안이나 섭정 노릇을 했던지라 울분에 가득찼던 투드모세 3세는 그녀가 죽고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하트셉수트의 오벨리스크에 회칠을 하며 화풀이를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일각에서는 장제전을 비롯해서 하트셉수트를 기리는 많은 건축물들이 고스란히 남은 것으로 봐서 그 둘의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죠.

남장을 했건, 후계자와의 사이가 어떻건간에 하트셉수트의 치세는 훌륭했고, 강력하면서도 사랑받는 파라오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보통 이집트의 여왕 하면 클레오파트라를 떠올리는데, 클레오파트라는 아무래도 알렉산더 대왕의 부하였던 프톨레마이오스 혈통인지라 순수 이집트 여왕이라고 보기엔 힘들지요. 게다가 본인의 힘이라기보다는 로마 권력자의 위세를 등에 업었다는 점도 있구요. 그래서 하트셉수트야말로 진정한 고대 이집트 왕국의 여성 파라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문명 온라인'이라는 게임에서는 하트셉수트를 이집트 진영의 지도자 캐릭터로 앞세우기도 했고, 여왕님의 카리스마에 굴복한 수많은 게이머들이 이집트 진영을 선택했다는 말도 있죠. 그런데 그 카리스마라는 게, '문명 온라인의 하트셉수트'로 검색해 보면 나오는 거지만, 참 뭐랄까, 강력한 파라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게임 캐릭터 일러스트의 한계랄까요.  


장제전 왼쪽에는 하토르 여신의 성소가 있습니다.

암소 머리를 한 하토르 여신은 호루스 신의 아내이자, 미와 사랑의 여신이기도 합니다. 그리스 신화의 아프로디테 여신이 하토르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지요.

자신의 장제전에 아름다움의 여신을 모시다니, 하트셉수트 여왕이 아무리 남장을 했어도 결국 속마음은 여자였던 걸까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엄청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집트 신화에 따르면 하토르 여신이 태양신의 명령을 받고 파괴의 신인 세크메트로 변해 파괴 지령을 수행하기도 하거든요. 하트셉수트 지휘하에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록도 여럿 남아있는 걸로 봐서는 '내가 여자라고 깔보면 세크메트로 변해서 박살을 내주겠어'라는 이미지도 잘 어울립니다.

 

오른쪽에는 재칼 머리를 한 죽음의 신인 아누비스의 신전이 있습니다. 파라오들은 죽으면 신과 하나가 된다고 여겼으니 죽음 역시 기피 대상이라기보다는 승진 심사관이라고 생각했겠지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이집트의 여러 신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은 신이기도 합니다. 각종 소설이나 게임 등에서 자주 등장하지요.

한 손에는 이집트 십자가 '앙크'를 들고 있습니다. 생명의 열쇠인 동시에 그 모양 자체가 이집트 상형문자로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타로카드나 오컬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익숙한 심벌인지라 아누비스 벽화를 보고 감동한 저로서는 기념품점에서 모조품 앙크를 하나 안 살 수가 없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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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도착지는 왕가의 계곡입니다. 역대 파라오들이 가장 많이 묻혀있는 동네지요.

피라미드를 아무리 크게 지어봤자 도굴꾼들을 끌어들이는 거대한 안내 표지판 역할밖에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이집트 왕들은 슬슬 자신의 무덤을 숨기기 시작합니다.

얼핏 봐서는 주변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흔하디 흔한 언덕 사이에 무덤을 파고 자신의 미이라와 황금관, 각종 보석 등을 묻어버린 거죠.

하지만 금은보화가 가득한 무덤을 한 개만 묻어놓은 것도 아니고, 왕가의 계곡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왕들을 이 좁은 동네에 묻어놨으니 도둑들이 그냥 포기할 리가 만무합니다.

본업에 충실한 도굴꾼들이 털어가는 건 당연하고, 무덤을 만들었던 인부나 제사를 담당했던 사제가 부장품을 빼돌리는가 하면, 재정이 궁핍해진 후세 파라오들이 어떻게든 예산을 충당해 보겠다고 조상님 무덤을 털어가는 일까지 벌어지곤 했습니다. 나중에 왕가의 계곡을 본격적으로 발굴했을 때, 거의 잊혀진 존재였던 소년 파라오 투탕카멘의 무덤만 제외하고는 다 도굴당했다고 하니 얼마나 쓸모없는 짓이었는지 알 만 하죠.

어쨌거나 돈 될만한 건 다 쓸어간지라 무덤 내부는 휑하기 그지없습니다. 석관과 벽화 정도가 전부랄까요. 심지어는 내장을 담았던 단지도 사라져 버리고, 그 단지를 놓았던 자리만 쓸쓸하게 남아있더군요. 반면에 귀금속과는 인연이 없던 공사장 인부들의 무덤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니, 역시 최고의 도둑 방지책은 무소유 아닐까 싶습니다. 

사진 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그 외에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게 없네요. '파라오의 저주'같은 흉흉한 소문 때문인지, 아니면 지하 석실의 특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덤에 들어가는 순간 느껴졌던 냉기만 생각납니다. 작열하는 태양이 만들어내던 외부의 열기와 대조가 되어서인지 더 서늘하게 느껴지더군요. 


이제 배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 룩소르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놀랍게도 이 큰 관광도시에 강을 건너는 다리는 하나뿐이고, 그나마도 시내 중심부에서 꽤나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들 배를 타고 강을 건넙니다.

강변에는 조그만 여객선 말고 커다란 크루즈선들도 여러척 정박해 있습니다. 돈 있고 시간 있으면 나일강 따라서 내려오는 크루즈 여행도 좋겠더라구요. 아무리 침대차라고는 하지만 기차 안에서 자는 것보다는 크루즈에서 먹고 자며 이동하는 게 훨씬 편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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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신전을 대표하는 양대 건축물 중 하나인 룩소르 신전입니다.

처음 지은 건 아멘호테프 3세인데, 이집트의 건축왕 람세스 2세가 증건하면서 완성했습니다.

이집트 왕들이 다들 그랬지만, 람세스 2세는 자기 기록 남기는 걸 엄청나게 좋아했던 파라오였던지라 자신의 사원을 세우는 건 물론이고 이렇게 기존의 신전들을 증축하면서 은근슬쩍 자기 이름도 좀 파넣고, 자신의 석상도 좀 가져다놓고 했지요.

그래서 룩소르를 돌아다니면 가장 자주 보게 되는 얼굴이 바로 람세스 2세입니다.


입구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 태양신에게 바치는 기념비입니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태양신의 두 기둥'이라고도 불리며 신전 입구에 두 개를 쌍으로 세우는 것이 원칙이지만, 힘깨나 쓴다는 서구 열강이 다들 하나씩 가져가는 바람에 이집트에는 5개밖에 남지 않았다더군요.

룩소르 신전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의 짝은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서 있습니다. 나중에 프랑스 여행을 가게 되면 룩소르 신전을 떠올리며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입구 좌우에 앉아있는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석상. 그리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보이는 수많은 기둥들과, 그보다 많은 수의 벽화들과,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관광객들.

세계적인 관광지이니 관광객 많은거야 당연하겠지만... 정말 룩소르의 관광객 인구 밀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광객을 노리고 구걸하는 사람들과 물건 팔아먹으려는 사람들과 사기치려는 사람들이 수천년 전에 만든 성스러운 신전을 배경으로 어우러지며 이집트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을 연출합니다.


돌로 만든 거대한 기둥들. 보통 기둥이라고 하면 천장을 받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건축물인데, 이집트 신전에 오니 그런 고정관념이 깨집니다.

'그냥 천장 없이 기둥만 세워놔도 이렇게 멋있구나'라고 압도되는 기분이랄까요. 상형문자를 해석하는 법을 알면 더 재미있을 텐데, 영어 읽기에도 벅찬 제 입장에서는 그림의 떡입니다. 


방금 입구에서 본 것 같은데 또 마주치게 되는 람세스 2세.

이쯤 되면 신의 분노를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교회 증축하는데 헌금 많이 냈다고 기둥마다 자기 이름을 새겨놓으면 저 위에서 보기에 어떻겠어요. 그런데 이름 새기는 것도 아니고 툭하면 마주치는 기부자의 거대 석상이라니...


기둥 사이마다 서 있는 석상들. 두 석상은 다행히 파라오를 상징하는 이중관만 땅에 떨어져 있네요. 다른 석상들은 머리가 통채로 사라지거나, 아예 몸 절반이 파손되었거나 하는 수준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파괴의 흔적이 신전이 겪은 세월을 증명하며 관록을 더해주는 것도 같고, 또 어떻게 보면 무분별하게 방치된 문화유산의 어두운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참으로 애매합니다.


아름다운 모양의 석주들. 이런 기둥들이 신전 내부를 빙 둘러가며 공간을 만듭니다.

도대체 인력으로 어떻게 이렇게 공장에서 찍어낸 듯 똑같은 모양의 돌기둥을 만들어 낸 것일까요.


또 다른 석주들. 아래쪽은 인간에 의해 훼손되고, 위쪽은 비바람이 쓸고 지나가며 상형문자를 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돌기둥을 지나 걷다 보면 어느 새 신전의 마지막 부분에 도달합니다.


룩소르 신전에서 볼 수 있는 스핑크스의 길. 원래는 이 길이 3km 떨어진 카르낙 신전까지 이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축제 때가 되면 카르낙 신전에서 살고 있던 신들이 이 길을 따라 룩소르 신전으로 놀러 와서 며칠동안 축제를 즐기고 돌아갔다고 하죠.


룩소르에서 마지막으로 보게 되는 것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카르낙 신전입니다. 

이집트의 주신인 태양신을 모시는 신전답게 파라오들이 지속적으로 증건하며 아름다운 건축물로 거듭났지만, 로마 점령기에는 점차 사람들에게 잊혀지며 모래 속에 파묻히는 신세가 됩니다.

거의 1900년대에 다다라서 프랑스 학자인 조르주 루그랑이 발굴해낼 때 까지 카르낙 신전은 도굴꾼의 좋은 먹잇감이었죠. 


입구 좌우측 벽면을 가득 메운 벽화와 상형문자들.

해석은 못하지만 대충은 짐작이 갑니다. 신은 위대하다, 파라오는 신의 대리인이다, 따라서 파라오는 위대하다... 뭐, 이런 내용이겠지요.

입구 저편으로는 카르낙 신전의 명물인 거대 석주의 회랑이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람세스 2세의 석상도 있습니다. -_-;;

발치에 조그맣게 조각된 여인은 람세스 2세의 아내인 네페르타리 왕비. 참으로 남존여비 사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체 비율이 아닐 수 없네요.

그래도 람세스 2세가 워낙 왕비를 사랑한 까닭에 이렇게라도 함께 있는 모습으로 조각한 거겠죠.  


룩소르 신전에서 봤던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한 돌기둥들이 빼곡하게 서 있습니다. 파피루스의 모습을 본따 만들었다고 하는 엄청난 크기의 돌기둥이 그냥 서 있기만 해도 멋질텐데, 그 수가 백여개를 훨씬 넘는다고 하니 압도되는 느낌입니다. 여기에 기둥은 물론 천장 부분에 이르기까지 빼곡하게 새겨진 상형문자를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신들의 거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카르낙 신전에 높이 세워져 있는 오벨리스크. 더 높은 것은 하트셉수트 여왕의 오벨리스크이고, 다른 하나는 투드모세 3세의 오벨리스크입니다.

이렇게 사이좋게 서 있는 오벨리스크를 보면 그 둘 간의 불화설이 거짓이라는 주장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다른 오벨리스크들은 세계 각지에 뿔뿔히 흩어졌습니다. 영국에도 가 있고, 터키에도, 이탈리아에도, 미국에도, 심지어는 이스라엘에도 한 개 가 있다고 하죠. 워낙 상징성이 큰 고대 유물이다보니 다들 하나씩 갖고 싶은가 봅니다. 그런데다가 앞서 말했듯이 현재의 이집트인들은 고대 이집트와는 문화적으로 단절된지라 오벨리스크에 그닥 애착이 없어서 여기 저기 인심 쓸 일 있으면 하나씩 선물로 안겨줬다고 하지요.

그런데 미국으로 입양된 오벨리스크라고 하면 당연히 워싱턴 D.C에 있는 건 줄 알았는데, 다시 알아보니 뉴욕 센트럴 파크에 있다는군요. 워싱턴 D.C의 오벨리스크를 보곤 '저 큰게 이집트에서 왔단 말이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벽에는 이렇게 벽화와 상형문자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길쭉한 원형 안에 새겨진 것은 파라오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파라오들이 좀 치사한게, 자기 이름을 후세에 알리고는 싶은데 건축물을 세우거나 벽화를 팔 돈은 없고 하다보니

기존에 새겨진 파라오의 이름을 깎아내고 자기 이름을 새겨넣는 짓을 많이들 했다고 합니다.

그런 치사한 짓을 가장 많이 한 게 바로 람세스 2세. 크리스티앙 자크의 소설, '람세스'에는 그야말로 불세출의 영웅으로 등장하는데 이렇게 상반된 모습을 보면 환상히 팍팍 깨져나갑니다.

그러면서도 후손들이 똑같은 짓을 할까봐 자기 이름은 무진장 깊게 새기도록 했지요. 그래서 지금도 람세스 2세의 이름이 다른 글자들과는 확연히 다른 깊이로 파여 있는 것을 종종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좋아하는 동물이 고양이라면, 좋아하는 곤충은 풍뎅이(쇠똥구리)입니다.

이렇게 돌로 조각한 풍뎅이의 석상이나 부적을 스카라베라고 하는데, 다산과 풍작을 가져다 준다고 믿어졌지요. 이게 더 발전하며 오늘날에는 부와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소문이 돌아서 카르낙 신전의 스카라베는 항상 그 주위를 탑돌이 하듯 도는 사람들이 줄 서 있습니다. 

저도 열심히 돌아서 그 덕을 봤는지, 나중에 또 다른 여행을 위한 자금 만드는 데 운이 좋았지요.

 

신전 여기 저기 널려있는 상형문자 새겨진 돌 조각들. 이대로 그냥 어디 박물관에 가져다 놔도 좋을 정도로 멋진 벽화들이 사방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로제타 석의 도움으로 상형문자 해독에 성공한 샹폴리옹이라면 이 비석에 새겨진 내용이 뭔지 금방 해석해 내겠지만, 평범한 관광객 입장에서는 그림을 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 수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하나 읽을 수 있는 건 아래쪽 그림의 두 타원형이 투드모세 3세의 이름이라는 거네요. 하트셉수트 여왕이 죽고 나서 수시로 전쟁을 벌이며 영토를 확장시킨 정복왕이니, 자신이 승리한 전투에 대한 내용이 아닐까 예상만 해 봅니다.


뒤로 돌아 본 카르낙 신전. 워낙 넓은 신전인지라 아직도 10% 정도밖에 발굴이 안 된 상태라고 합니다.

다 발굴되고, 더 나아가 복원 과정을 거쳐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되지 않네요.

수천년의 모래바람과 이교도들의 파괴 행위를 이겨내고 남은 모습만으로도 이렇게 경외로운데...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카르낙 신전을 마지막으로 룩소를 떠나 차를 타고 이동합니다.

다시 야간운전으로 주구장창 달려 도착한 곳은 아스완. 숙소에 들어서니 이미 밤이 깊었습니다. 창밖을 보니 유난히 밝게 빛나는 이슬람 사원이 보입니다. 피라미드와 고대 신전으로 가득한 이집트지만 지금 이 곳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모스크가 가장 중요한 장소라는 걸 보여주는 듯 합니다.

피곤한 몸을 침대에 눕히고 잠을 재촉합니다. 내일은 새벽부터 차를 타고 아부심벨로 이동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