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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Eat/미국:U.S.A

[미국] 브런치의 제왕, 에그 베네딕트

레스토랑에 갔을 때 브런치 메뉴에 에그 베네딕트가 적혀있는 것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됩니다.

개인적으로 음식점의 레벨을 측정할 수 있는 메뉴라고 생각하는 게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에그 베네딕트이기 때문이죠.

일단 수란을 제대로 만들 수 있어야 하며, 홀랜다이즈 소스를 만드는 걸 귀찮아하지 않을 정도의 정성도 필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재료는 흔하디 흔한 달걀이 메인인지라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고 정겨운 느낌도 듭니다.

일단 재료는 잉글리쉬 머핀, 버터, 달걀, 베이컨, 시금치, 레몬. 여기에 덧붙여서 후추와 소금, 그리고 진짜 제대로 만들려면 화이트와인에 타라곤도 준비해 둡니다.

 

홀랜다이즈 소스를 만들기 전에 우선 화이트 와인에 통후추와 타라곤, 파슬리를 넣고 졸여줍니다.

대부분 이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그만 정성이 큰 차이를 만듭니다. 진짜 제대로 만든 에그 베네딕트라면 은은한 타라곤의 향이 빠질 수 없죠.

프랑스 요리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스인 만큼, 약간은 오버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갖은 재료를 다 넣고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달걀 노른자 두 개를 중탕으로 가열하며 거품기로 저어줍니다. 너무 가열하면 달걀이 익어버리니 온도가 올라간다 싶으면 끓는 물에서 내려서 저어주다가 다시 중탕하는 게 좋습니다.

중간중간 녹인 버터를 조금씩 살짝살짝 넣어줍니다. 귀찮다고 한번에 다 부어버리면 실패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게 됩니다.

점도를 체크하면서 계속 저어주는데, 원하는 정도보다 좀 더 꾸덕꾸덕한 수준으로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합니다. 마지막에 레몬즙과 와인을 넣으면 농도가 묽어지거든요. 만들어놓은 화이트와인 소스에 레몬 반개 분량의 레몬즙을 짜서 넣고 스푼으로 조금씩 넣어가며 최종적으로 농도를 맞춰줍니다. 

완전히 마요네즈처럼 진하게 만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란 위에 부었을 때 화산에서 용암 내려오듯 천천히 흘러내릴 정도가 딱 좋더군요. 


홀랜다이즈 소스가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면, 수란은 기술이 중요한 부분이죠. 홀랜다이즈 소스에서 버터와 노른자가 분리되지 않고, 수란이 동그랗게 잘 나오면 에그 베네딕트는 거의 완성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끓는 물에 식초를 넣어 응고를 촉진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굳이 식초 안써도 수란 만드는 게 가능합니다. 유명한 요리사인 제이미 올리버는 '달걀만 신선하다면 그냥 끓는 물에 깨서 넣기만 해도 수란이 만들어진다'고도 했었죠. 그냥 냄비에 물을 끓이고, 주걱으로 휘휘 저어서 소용돌이를 만들어 준 다음, 소용돌이 한복판에 달걀을 깨서 넣으면 원심력 때문에 둥근 모양이 유지됩니다.

노른자까지 다 익어버리면 안 되니 그 전에 주걱으로 살짝살짝 모양 잡아주면서 건져내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에 사용한 건 베이컨 대신 판체타. 베이컨이 돼지 뱃살을 소금에 절인 후 연기로 훈제해서 맛을 낸다면 판체타는 훈제하는 대신 각종 허브를 이용해서 독특한 풍미를 냅니다.

뭐, 특별히 판체타를 쓴 이유는 없고, 그냥 둥글게 말려있는게 따로 모양 안내도 빵 위에 얹기 좋게 생겼더라구요.

 

돼지 기름이 남아있는 팬에 시금치를 볶아줍니다.

사실 진짜 에그 베네딕트에는 시금치가 안 들어갑니다. 베이컨과 수란이 들어가면 에그 베네딕트, 시금치와 수란이 들어가면 에그 플로렌틴, 연어와 수란이 들어가면 에그 아틀란틱이라는 이름이 붙지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에그 베네딕트에 시금치 들어가는 레시피가 대세가 되었네요.


잉글리쉬 머핀은 반으로 갈라 살짝 굽고, 그 위에 시금치와 판체타, 수란을 차곡 차곡 올려줍니다.

홀랜다이즈 소스를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에그 베네딕트가 미국식 요리가 된 이유는 바로 이 조합에 있지요.

1800년대 말에 베네딕트라는 사람이 뉴욕 호텔에서 '잉글리쉬 머핀과 베이컨, 수란. 홀랜다이즈 소스를 넉넉히 얹어서'라고 주문한 게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음식이거든요.


수란으로 뚜껑을 얹은 다음 홀랜다이즈 소스를 넉넉히 뿌려줍니다.

파슬리 약간과 후추를 뿌려서 마무리.


홀랜다이즈 소스가 천천히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뿌듯해 집니다.

만들기도 손이 많이 가는 소스인데다가 몇시간 지나면 버터와 노른자가 분리되기 때문에 유통기한도 무지하게 짧은 귀하신 몸이 바로 홀랜다이즈 소스지요.

버터와 달걀 노른자로 만들어서 고소하면서도 레몬의 신맛이 느끼함을 잡아줍니다.


수란을 잘라 노른자를 터뜨리면 달걀 노른자가 흘러나오면서 소스와 섞입니다.

둘 다 노란색이지만 완전히 같은 색깔은 아니네요. 


한조각 잘라서 소스와 달걀 노른자가 빵에 흠뻑 묻도록 잘 적셔준 다음 한 입 먹으면... 

왜 이 메뉴가 브런치의 왕이라고 불리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담되지 않는 아침 메뉴의 대명사인 머핀, 베이컨, 달걀. 

그리고 홀랜다이즈 소스가 이 재료들을 묶어주면서 단순한 햄에그 샌드위치와는 차원이 다른 맛을 이끌어 냅니다. 

손이 많이 가는게 유일한 단점인지라 자칫 잘못하면 브런치가 아니라 점심으로 먹어야 한다는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