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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Eat/이탈리아:Italy

[이탈리아] 내 영혼의 치킨 파스타 수프

얼마 전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의사가 약 대신 닭고기 수프를 처방해 주는 바람에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영양학적인 관점은 둘째치고, 서양에서는 닭고기 수프가 일반적인 음식을 넘어서 따뜻한 가정의 맛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모양이더라구요.

유럽에서는 옛날부터 벽난로를 난방수단으로 사용해왔으니 일단 불을 때고 있노라면 솥을 걸고 뭐라도 요리하는 게 경제적이었겠지요.

이런저런 재료를 다 넣고 오랜 시간 푹푹 끓여낸 수프는 비록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음식 취급을 받았을지언정 그 냄새와 온기만으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을 겁니다.

치킨 수프는 대표적인 가정식 요리이고, 가정식 요리라면 그 날 집에 있는 재료를 대충 넣어서 만들어 먹는 게 특징이지요.

오늘 만드는 수프는 가장 일반적이고 기본적인 재료 - 닭과 감자, 당근, 양파, 마늘로 끓여냅니다. 원래는 샐러리도 들어가지만 냉장고에 남은 게 없으니 패스하고, 그 대신 개인적으로 수프 만들때마다 추가로 넣어먹는 양송이 버섯을 잔뜩 썰어 넣습니다.

 

커다란 냄비에 버터를 녹이고, 마늘과 양파를 볶아줍니다.

중간불로 들들 볶으면서 양파가 흐물흐물 해 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물을 붓고, 닭 한마리를 통채로 넣고, 나머지 재료들도 다 쎃어넣어 줍니다.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죠. 타이머 맞춰두고 다른 일 하다 와서 거품 걷어내고 물을 더 부어주는 식으로 반나절 정도 끓여줍니다.

냄비를 너무 작은걸로 하면 물이 금방 증발해서 자주 갈아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큰 냄비에 팍팍 끓여주는게 편하기도 편하고 맛도 있지요.


반나절 정도 삶다가 닭을 건져냅니다.

완전히 흐물흐물해져서 건져내다 보면 막 저절로 해체가 되기도 합니다. 연한 뼈 부위를 손으로 비벼보면 부스러질 정도가 되었다면 잘 되고 있는 겁니다. 

잠깐 식혔다가 비닐장갑을 끼고 뼈에서 살을 다 발라냅니다. 그렇게 발라낸 살을 다시 냄비에 넣어줍니다.


소금, 후추로 간을 하고 각종 허브로 맛을 냅니다. 

저는 주로 파슬리를 많이 넣고 타임도 약간 넣습니다. 이번엔 파스타도 넣어 먹을 예정이니 월계수잎도 살짝 추가.

그리고 반나절을 더 삶아줍니다. 아침에 끓이기 시작하면 저녁에 먹기 딱 좋지요.


사실 닭고기 수프라는게 다른 기본적인 요리들과 마찬가지로 국적 따지기 참 애매한 요리중의 하나입니다. 결국 닭을 삶아서 국물과 함께 먹는 게 치킨 수프인데 이거야 다들 오래 전부터 만들어 먹어온 메뉴니까요. 우리 나라 삼계탕도 동양식 치킨 수프에 속하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도대체 분류를 어느 나라로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이번에는 루(Roux)도 안들어가고 이탈리안 시즈닝을 한 데다가 파스타를 곁들여 먹으므로 이탈리안 요리라고 하는 편이 적당할 듯 합니다.

큰 냄비에 파스타를 부어 버리면 파스타 건져먹기가 힘드니 작은 냄비에 한 번 먹을 분량의 치킨 수프를 덜고 국물을 추가로 좀 더 부어준 다음 파스타를 끓입니다. 따로 삶아서 합치는 것 보다 이렇게 끓이는 게 맛이 더 잘 배어들어서 입맛에 맞더라구요. 

 

완성된 치킨 파스타 수프입니다. 사과, 빵, 오렌지 주스와 함께 먹으면 든든한 아침식사가 되지요.

감기에 걸렸을 때는 물론이고 피곤하거나 쓸쓸할 때, 춥고 비오는 날 먹어도 좋은 메뉴입니다.

괜히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라는 말이 나온게 아니더라구요.


오래 끓여서 닭고기가 다 풀어져 있습니다. 굳이 힘들여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갈 정도로 부드럽네요.

뜨거울 때 한 숟갈 떠서 먹으면 온 몸이 따뜻해 집니다. 

남은 건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쌀을 조금 넣고 끓여서 치킨라이스 수프를 끓여먹어도 되고, 국수 등의 면 종류를 넣어서 치킨누들 수프를 만들 수도 있고, 이도저도 귀찮으면 그냥 따뜻하게 데워먹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