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하기:Travel/인도:India

[인도]아대륙의 중심, 델리

몇 번 여행을 하다보니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문화유산들은 다 돌아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나.

그래서 이번엔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 인도로 떠났습니다. 

도착한 첫 날은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한 후 잠을 잔 게 전부고, 본격적인 일정은 이튿날부터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책이라도 할까 싶어 나오는데 호텔 로비에 놓인 가네샤 신상이 나를 환영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인도에 왔구나,라고 실감하게 된 건 길거리로 나오면서부터.

너무 갑작스러운 바람에 사진을 찍지는 못했는데, 새벽 거리에 나오자마자 왠 돼지가 개 두마리에게 쫒겨 그야말로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앞을 지나가더군요.

인도 글자인 데바나가리로 적힌 간판이나 세 바퀴로 굴러가는 조그만 오토릭샤도 인도 분위기 물씬 풍기는 배경입니다만 눈뜨고 곧바로 마주친 새벽의 동물 추격전에 비하면 아무래도 임팩트가 약합니다.

 

가장 먼저 들르게 된 곳은 쿠툽 미나르. 이슬람계 왕조의 창시자인 쿠툽 웃 딘 아이바크가 인도를 정복하며 기념하여 세운 탑이 있는 곳입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될 정도로 유명한 유적지여서인지 현지 여학생들이 단체로 견학을 왔습니다.

어느 나라나 학생들은 다 귀엽고 예뻐보이겠지만, 인도는 특히 눈과 코의 선이 뚜렷해서인지 어린애들도 그냥 귀여운 게 아니라 '크면 엄청 미남미녀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예쁩니다. 

 

유적지 내에 위치한 일투드미시 왕의 무덤. 일투드미시는 원래 노예였으나 그 재능을 인정받아 총독의 자리에 오르고, 나중에는 아이바크 왕의 사위가 되었다가 결국 왕위를 물려받은 인물입니다.

노예에서 출발해서 공주와 결혼하고 왕이 되다니, 소설의 주인공 같네요.

무덤의 분위기도 왠지 엄숙함을 넘어서 영화에나 나올법한, 뭔가 있어보이는 분위기입니다. 


쿠툽 미나르의 위용. 아래쪽 사람들의 크기와 비교해야 그 크기가 실감납니다.

높이가 무려 73미터에 달하는 석탑으로, 이렇게 높은데도 층수는 5층에 불과합니다. 


벽면에 새겨진 아름다운 무늬는, 무슬림의 전승기념탑답게 코란의 구절을 새겨놓은 것입니다.

아래쪽은 힌두 양식, 위쪽은 이슬람 양식으로 세워진 건축물이기도 하지요.

크기도 크기지만 기둥의 모양이나 벽돌이 만들어내는 무늬 또한 인상깊은 건축물입니다.

하지만 워낙 높다보니 벼락도 두 번이나 맞고, 지진으로 일부가 무너지기도 하고, 결정적으로 1980년대 단체관람객들의 압사 사고가 일어나면서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듣기로는 이슬람 율법 상 모스크보다 높은 건물을 지으면 안된다던데, 너무 높은 건물을 지어서 그런 걸까요.


쿠툽 미나르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연꽃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바하이 교의 사원입니다.

연꽃 모양을 따서 만든 건물의 외양도 아름답지만, 그보다도 더 감동적인 것은 내부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바하이 교는 모든 종교의 가치를 긍정하는 교리를 갖고 있는데, 요약하자면 '결국 진리(신)은 하나이고 모든 종교는 그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므로 종교간에는 갈등이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조화와 화합만이 존재할 뿐이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신전 안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자신의 방식대로 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규칙입니다.

외부에서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소음에 시달리다가, 연꽃 사원 안으로 들어가서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순간 완전한 정적이 흐릅니다. 마치 불교의 입정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개신교, 천주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태교... 그 어떤 신을 믿는 사람이라도 이 경건하고도 고요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노라면 결국 모두가 같은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첫 날부터 이렇게 영적인 경험을 하니 인도가 정신적인 깨달음을 얻기 좋은 곳이라는 말이 새삼 실감됩니다. 


바하이 사원을 나와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들린 인디아 게이트.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듯이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 만든 기념비입니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인도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전사자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는 건축물입니다.


점심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우선 주문한 맥주. 인도의 국민 맥주, 킹피셔입니다.

맥주병 라벨에 그려진 새가 킹피셔(물총새)입니다. 

좋게 말하면 가볍고 시원한 맛이고, 나쁘게 말하면 특징없는 무미건조한 맛입니다. 맥주를 마신다기 보다는 밥 먹을 때 곁들이는 시원한 저알콜 음료의 개념으로 마시기 좋네요.


점심 메뉴는 양고기 전골입니다. 힌두교도는 소를 못 먹고, 이슬람교도는 돼지고기를 못 먹다보니 닭고기나 양고기, 염소고기가 주로 요리재료로 사용되는 듯 합니다.

신선로처럼 생긴 기구에 양고기를 뜨끈뜨끈하게 익혀 먹습니다. 일행 중에는 양고기 냄새 때문에 못 먹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제 입맛에는 잘 맞더군요. 하긴 중국 왕푸징 거리에서 굼벵이 구이도 먹은 판에 입맛에 안 맞는게 있을지 의문이긴 합니다.


점심 식사 후에 찾아간 곳은 마하트마 간디의 묘소입니다.

인도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비폭력 저항의 선구자. 어릴 적부터 위인전으로 수없이 접했던 인물이 누워있는 곳을 직접 보고 있으니 왠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과연 비폭력 저항이 효과가 있는 시도였나' 하는 의구심은 끊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한지라 왼쪽 뺨을 맞고 오른쪽 뺨을 내밀면 "세상에 이런 호구가 있나"라며 오른쪽 뺨도 마저 때리고 다 털어갈 사람들이 넘쳐나니까요. 인도의 독립은 결국 인디아 게이트에 새겨진 수많은 인도 병사들의 피로 쟁취해 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델리의 유명한 건축물이라면 붉은 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필이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출입 통제가 되는 바람에 안쪽은 못 들어가 보고 겉모습만 보고 왔지만,

붉은 색의 높은 성벽과 아름다운 성문은 앞으로 만나게 될 타지마할의 예고편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페르시아, 유럽, 인도의 영향을 모두 받은 건축물인지라 미술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까닭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또한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면서 최초로 독립 선언을 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요새를 건축한 '샤 자한' 왕의 이름이 더 인상적입니다. 이집트에 람세스 2세가 있었다면, 인도의 건축왕이라고 불릴 만한 인물이 바로 샤 자한이기 때문입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본 도로 풍경.

오토바이와 마차와 오토릭샤와 자동차가 한데 뒤엉킨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으면서 오늘날의 인도를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차역 앞에서 본 소.

힌두교에서 소가 워낙에 신성시되는 탓인지 인도에서 만난 소들은 다들 사랑받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소만해도 주인은 거지 차람새나 다름 없는데, 그 와중에 소 목에 목걸이 걸어주는 게 인상에 남네요.


현지인 가이드가 난처한 표정으로 오더니, 기차가 많이 연착된다고 합니다. 세 시간 넘게 연착이라나요.

그동안 기차역에 앉아서 시간 보내기도 뻘줌하니 가까운 곳이라도 가서 구경하자며 데려간 곳이 바로 이곳, 아크샤르담 사원입니다.

다른 곳도 구경하자면 구경할 장소가 많겠지만, 왠지 힌두교 자부심 가득한 가이드가 자랑하려고 데려온 곳 아닐런지..라고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입에 침을 튀기며 자랑을 하는데, 세계의 4대 힌두교 사원 중 하나라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하이 사원이 더 마음에 드네요.


세 시간 뒤에 도착한 기차역. 하지만 우리가 탈 기차는 다시 추가로 두 시간 연착입니다.

플랫폼 가득한 인도 사람들을 구경하며 (그리고 그 사람들은 동양인 일행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미국에서는 기차가 한시간 연착하면 사람들이 경악하고, 일본에서는 기차가 십분 연착하면 사람들이 경악하고, 인도에서는 기차가 정시 도착하면 사람들이 경악한다더니 농담이 슬슬 진담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합니다.


불빛이 번쩍거리는 기계가 있길래 '저게 뭔가'하고 보고 있는데, 사람들이 가끔 그 기계 앞에서 돈을 넣고 표딱지를 뽑아가는 게 보입니다. 복권 판매기 같은건가 싶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체중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체중계가 비치된 체육관이나 목욕탕이 많은 것도 아니고, 몸무게 모른다고 사는 데 크게 지장도 없으니 저런 식으로 가끔 가다 심심하면 체중을 재는 게 일상화 되어 있습니다. 좀 더 시골에서는 길가에 체중계 하나 꺼내놓고 앉아있는 노인의 모습도 간간히 보이더군요.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도착한 침대차.

열차가 도착할 때 쯤 되니 스피커에서는 웅웅 울리는 소리만 들리고, 이게 영어인지 인도말인지도 못 알아듣겠고, 도착 플랫폼은 수시로 바뀌고, 사람들은 그에 따라 이리저리 우왕좌왕...

가이드 없었으면 열차 놓치고 미아 되기 딱 좋겠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기차에 타서 짐을 풀고 누우니 이제야 한 숨 돌린 기분입니다. 통로를 지나다니며 인도식 홍차인 짜이를 파는 종업원이 있길래 한 잔 사서 마시며 잠을 청합니다. 특유의 억양으로 "짜이~ 짜~이" 하는 목소리가 지나가면 또 잠시 후에는 총을 든 경비원이 도둑은 없는지 감시하며 지나갑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며 어느 새 까무룩 잠이 들고, 기차는 그 동안 델리를 떠나 바라나시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