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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Travel/인도:India

[인도]바라나시, 초전설법지와 갠지스강

바라나시에서 가장 먼저 가게 된 곳은, 바로 옆동네인 사르나트에 위치한 녹야원입니다. 초전설법지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불교의 4대 성지 중 한 곳으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후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설법을 한 곳입니다.

불교는 절대신이 없는 종교인지라 여타 신앙과는 다른 점이 많습니다. 부처님에게 아무리 기도하고 빌어도 극락 (또는 해탈)을 얻을 수 없고, 본인이 수행하고 깨달아야만 태어나고 죽고 다시 환생하는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의 수만큼 부처의 수도 많다고 하고, 그 깨달음을 얻는 방법도 다양하다고 하지요. 

우리가 흔히 부처님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 붓다(부처. 깨달음을 얻은 고귀한 자)로서의 이름은 석가모니불. 왕자로 태어났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사람들을 보고는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려도 부질없다. 윤회에서 벗어나야 겠다.'고 결심한 후 수행을 거듭해 결국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깨달음을 얻었으니 곧바로 거추장스러운 인간 세상에서 벗어나 극락정토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세에 남아 한 사람이라도 더 깨우치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죠. 오래달리기에서 결승점 통과하고 나서도 뒤쳐진 사람들을 위해 함께 뛰며 길안내를 해주는 느낌이랄까요.


이를 기리기 위해 전 세계의 불교 신자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존경심을 표시합니다. 

향을 태우는 곳은 너무나도 많은 향을 태워서 새카맣게 그을려 있고, 티벳에서 온 승려들은 기둥과 벽에 소중하게 들고 온 금박 종이를 붙여놓았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그 조그만 조각들이 빼곡히 모여 금색 기둥을 만들어 냅니다.


녹야원에서 가장 큰 건물인 다메크 스투파. 스투파는 초기 불교 건축물인데 탑, 사원, 사리(부처나 고승을 화장하고 남은 유골에서 발견되는 구슬) 보관소 등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대다수의 종교가 그렇지만, 불교가 처음 나타났을 때만 해도 종교로서의 체계나 위용보다는 선각자의 가르침을 얻는 사람들의 모임 정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후세에 이르러 불교를 믿는 왕들이 등장하고, 승려들에게 막대한 재물을 시주하면서 건축하게 된 것이 스투파지요. 부처님 자신부터가 거적 하나 깔고 나무 밑에서 자고, 직접 나무 바가지 들고 여러 집을 돌며 음식을 시주받아 배를 채우며 물질에 대한 탐욕을 경계하라고 가르쳤으니 그 제자들이 돈 쓸 줄 모르는 것은 당연지사. 왕과 부자들이 기부를 하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돈으로 비싼 음식을 사먹을 수 있나, 좋은 집을 지을 수 있나. 요즘 같으면 순금으로 만든 거대한 불상이라도 세웠을텐데 워낙 돈 안쓰던 사람들인지라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고 그나마 궁리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 기념탑입니다. 

그래서인지 스투파를 탑돌이하며 한바퀴 빙 돌고 있노라면, 실용적인 면모를 찾기 힘든 이 건축물이 어찌 보면 불교의 무소유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가끔 들러서 명상하던 동네 절의 주지스님이 바뀌면서 기둥과 벽에 금칠을 해대는 것을 보고 발길을 끊었는데, 금빛으로 번쩍거리던 허세 가득한 사찰 건물과 대조적인 모습이랄까요.   


주변 나무에는 우리나라 서낭당 나무 가지에 색지 걸어놓은 것 마냥 알록달록한 종이들이 줄지어 걸려있습니다.

그 하나하나에 저 먼 나라에서 온 승려와 신도들의 기도와 축원이 담겨있겠지요.

재밌는 것은 불교의 발원지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인도에서는 그 교세가 힌두교와 이슬람교에 밀려 그닥 크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티벳, 중국, 한국, 일본쪽이 더 큰 영향을 받았지요. 그렇다고 또 완전히 무시당하는 건 아닌게, 힌두교의 비슈누 신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취한 아홉가지 화신(아바타) 중의 하나가 붓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힌두교에서는 '거짓된 가르침을 펼쳐 악인들이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붓다의 역할이라고 가르치지만요. 하긴, 불교에서도 힌두교의 신들을 끌어들여 팔부신중(천룡팔부)를 만들어 냈으니 피장파장인가요.

  

사르나트에서 바라나시로 들어가는 길. 자동차와 오토릭샤가 뒤엉키며 혼잡한 와중에도 로타리 입구의 소들은 태연자약합니다. 

소를 죽이는 건 힌두교도에게는 상상도 못할 극악한 범죄인지라 차라리 사람을 치면 쳤지 소를 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에서일까요, 바로 옆에 자동차가 휙휙 지나가도 소들은 그저 소 닭보듯 쳐다보기만 합니다.

하긴, 총리 선거에서 후보자가 자신이 독실한 힌두교도임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소 오줌을 마신다"고 광고하기도 하는 나라가 인도입니다. 


날이 저물고 바라나시의 명물인 뿌자 의식을 구경하러 나왔습니다.

땅에서 갠지스강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가트라고 하는데, 매일 밤 이곳에서 갠지스강의 여신을 위해 제사를 지내고 기도를 올리는 의식이 치뤄집니다.

힌두교도들은 시신을 화장하고 갠지스강에 그 재를 뿌리면 영혼이 안식을 취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 뿌자 의식은 단순히 신에게 올리는 제사일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들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기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여러명이 동시에 음악에 맞춰 춤추듯 향을 흔들고 촛불을 들어 기도를 합니다.

뿌자 의식은 카스트 제도의 최고 계급인 브라만(바라문)이 아니면 주최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브라만이 승려 및 학자 계급을 뜻하기도 하지요. 인도 전체 인구의 4% 정도가 브라만 계급이라고 합니다. 인도 오기 전에는 카스트 제도에 대한 환상같은 게 있어서, 브라만 계급 쯤 되면 신과 인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사람들이니 막 후광이 비치고 할 줄 알았는데, 막상 우리 일행 여행 가이드도 브라만 계급이고 좀 지내보니 다 똑같은 사람이더군요. 

의식이 끝날 때쯤 되면 사람들은 조그만 그릇에 꽃과 촛불을 넣고 갠지스강에 띄워 보냅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갠지스 강에서 보트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숙소에서 나왔습니다.

강으로 가는 길에 만난 소느님. 그냥 소가 아니고 진짜 소님입니다. 어둑어둑한 새벽 골목길 저쪽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오는데 지금껏 봤던 길거리 소들과는 달리 건강상태도 좋고 털도 깨끗하고, 뭣보다도 품위랄까 관록이랄까 하는 게 느껴집니다.

걸음걸이도 왠지 품격이 있고, 시선 돌리는 것도 우아한게 어쩌면 진짜 브라만의 환생일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침부터 흐리고 간간히 빗방울도 떨어지는지라 갠지스강의 일출을 보는 건 포기합니다.

출렁이는 나룻배를 타고 갠지스 강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트에 모여 성스러운 갠지스 강에 몸을 담그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수질이 굉장히 안좋다고는 하는데, 영적인 측면에서는 영혼을 씻어주는 어머니 여신의 강입니다. 가이드 말로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화장터에서 설익은(-_-;) 시체가 떠내러오기도 한다고 합니다. 원래는 완전히 화장하고 유골 몇점만 남게되면 그걸 갠지스강에 떠내려 보내는데, 유족이 가난할 경우 충분한 장작을 사지 못하는데다가 비까지 오니 그런 일이 생기는듯. 다행히 시체와 만나는 불상사를 겪지는 않았지만요.

강을 따라서 여기저기 불길이 올라오는 것이 보이면 어느 새 화장터에 다다릅니다. 흔한 장례식도 아니고 고인을 화장하며 보내는 마지막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 것이 왠지 결례인 것 같아 마음 속에만 담아둡니다.

악취가 날만한 부분은 이미 다 타버려서인지 소문으로만 듣던 사람 타는 특유의 냄새는 그닥 나지 않습니다. 고깃집에서 삼겹살 굽다 태워먹었을 때의 냄새와 비슷한 느낌만 날 뿐입니다. 결국 어떤 사람이건 죽으면 남는건 다른 동물들의 최후와도 별다를 것 없는 이 한줌의 재, 한줌의 뼛가루 뿐. 

육지와 강이 만나고, 삶과 죽음이 교차하고, 신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에 있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바라나시에서 일주일 쯤 지내면 다들 도 닦는 수도자가 된다더니, 진짜 사는 게 뭔지 다시 생각합니다. 


바라나시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카주라호를 향해 이동합니다.

버스를 타고 산간도로를 따라 이동하는데, 산중턱 높다란 곳에 위치한 좁디좁은 도로에 왠 자동차들은 이리도 많은지...

극심한 교통정체 때문에 버스에서 내려 슬슬 걸어가며 다리 운동도 하고, 바람도 쐬다가 다시 버스로 들어오기를 반복합니다.


한 꼬마가 돌담 위에 올라가 이쪽을 바라봅니다. 꼬마야 안 무섭니?


도로는 자동차로 꽉 막혔는데, 발 아래로는 저 넓은 대지가 펼쳐집니다. 그야말로 시야에 거칠 것 없이 지평선 끝까지 훤히 보입니다.

이런 풍경을 보니 인도가 참 넓긴 넓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왜 작은 대륙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갑니다. 바라나시 화장터를 보고 와서 그런지 저 넓은 땅을 놔두고 이 좁은 길목에서 복작복작하는게 왠지 덧없는 인생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것들을 놔두고 일에 묶이고 돈에 얽매이고 걱정에 둘러싸여 사는 인생 말이죠.


바람 쐬려고 버스에서 내려서 좀 걷다 보니 구걸하는 아이들과 마주쳤습니다.

캄보디아 여행(http://40075km.tistory.com/30)하면서 배운 게 있는지라, 돈 대신 모나미 볼펜이나 한자루 씩 쥐여줍니다.

인도는 구걸하는 것도 왠지 다른 나라와는 동떨어진 메카니즘을 갖는 듯 합니다. "너는 돈이 많고, 나는 돈이 없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돈을 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라는 느낌이랄까요. 실제로 어떤 배낭여행자는 여분의 신발을 배낭에 매달고 다녔는데, 거지가 와서는 주인이 보는 앞에서 천연덕스럽게 그 신발을 가져가려고 하더랍니다. 이게 무슨 짓이냐고 따지니 "너는 발이 두개 뿐이다. 신발이 두 켤레 있어도 둘 다 신지 못한다. 반면에 나도 발이 두개인데 나는 신발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신발을 나눠 쓰는게 당연하다."라는 논리를 폈다더군요. 그 거지가 나름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인지 어리버리한 관광객 호구잡으려던 사기꾼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이 인도입니다.


교통 정체가 풀리고 버스는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새 눈 앞에 펼쳐진 노란 꽃밭. 유채꽃인가? 잘 기억이 나질 않네요.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버스가 길 가에 멈춰섭니다. 교통정체가 워낙 심했던 까닭에 예약했던 식당까지 도저히 식사시간에 맞춰서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시골길 한복판의 벽돌 가건물 비슷한 식당에서 그야말로 진짜배기 현지식을 먹게 되었습니다.

관광객 대상으로 하는 현지 식당이 아니라, 이 길을 지나다니는 인도인 운전기사들 상대로 하는 음식 장사라서 그런 한떼거리의 외국인들이 쳐들어오자 종업원들이 다들 당황하는 눈치입니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주변을 돌아봅니다. 

외국 관광객들이 이런 동떨어진 휴게소에 복작대는게 신기한지 동네 꼬마들이 앉아서 구경을 합니다.

꼬마들은 우리를 구경하고 우리 일행은 꼬마들을 구경합니다. 

길 건너편에는 얼기설기 얽은 천막에 한 남자가 간단한 물건을 늘어놓고 팔고 있습니다. 인도식 고속도로 간이휴게소라고나 할까요. 뭘 파는지 궁금하긴 한데, 괜히 마약 사라고 흥정 걸어올까봐 그냥 구경만 합니다.

실제로 좀 더 큰 휴게소에서는 운전기사가 누군가에게 돈을 건네고 화장실 뒷편에서 마약 건네받는 걸 자주 볼 정도로 인도에는 마약이 흔합니다. 아편 무역의 역사와 전통일까요. 방(Bhang) 같은 마약은 마시면 잠을 쫓고 기운을 북돋아준다고 해서 운전수들이 많이 사용한다던데, 인도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방라씨 (마약을 넣은 라씨 음료) 마셔봤다는 경험담도 간간히 돌 정도로 구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형법은 속인주의인지라 한국인이 마약이 합법인 외국으로 나가서 마약을 해도 불법입니다. 블로그에 네덜란드에서 마리화나 피운 거 자랑했던 사람이 경찰에 잡혀갔다는 카더라 통신도 있지요.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외국 나오면 가급적 안전하게, 하라는 일은 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안 하는게 즐거운 여행 비결입니다. 인도가 후진국에 치안이 안좋다고 하지만 사람 많은 큰길 위주로 대낮에 여러명이 모여 다니면 안전하고, 아무리 치안이 좋은 선진국에 가더라도 술먹고 뒷골목에 뻗어서 쓰러져 있으면 위험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인도식 빵인 '난', 시금치 커리, 야채무침과 이름 모를 반찬 몇가지.

그런데... 정말 완전 맛있습니다. 인도 여행중에 투숙했던 호텔 레스토랑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먹었던 그 수많은 인도식 레스토랑 통틀어도 이 허름한 식판에 담겨져나온 현지식을 당해낼만큼 맛있는 인도 카레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적 없네요. 단순히 배가 고파서 맛있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마약김밥, 마약떡볶이처럼 왠지 모르게 사람을 끌어당기며 계속 생각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이거... 혹시 진짜 마약 넣은 거 아닌가?  

나름 외국인 관광객한테 신경써준다고 있는 스푼, 포크 총동원해서 내와도 사람 수에 턱없이 부족한지라 내 스푼은 나이드신 일행분에게 넘기고, 인도 음식을 인도식으로 오른손만 이용해서 먹는데 아.. 진짜 눈물나게 맛있습니다.


다 먹고난 식판은 이렇게 들판에 던져두면 주변의 개나 새들이 와서 찌꺼기를 먹습니다. 동물들 먹고 살 걱정도 해주는 인도식 음식물 쓰레기 처리법. 그런데 생각해보면 개밥그릇을 공유한 셈이기도 하네요.

배부르게 먹고 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 해 떨어지고 나서도 한참을 이동했는데, 중간에 호랑이 출몰지역을 지나온 게 기억에 남습니다. 사슴주의 표지판이 아니라 호랑이 주의 표지판이 길가에 붙어있더군요. 차에 탄 관광객들은 운이 좋으면 호랑이를 볼 수 있을테고, 걸어서 이동하는 인도 현지인은 운이 나쁘면 호랑이를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우리 일행은 운이 나쁜 관광객들이었는지, 혹시라도 공짜 사파리를 즐길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눈에 불을 켜고 창밖을 응시했지만 호랑이 보호구역을 지나 카주라호 숙소에 도착할때까지 호랑이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