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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Travel/인도:India

[인도]아그라, 샤자한의 시선으로 바라본 타지마할

인도 현지인보다 30~40배 쯤 비싼 타지마할 입장료를 지불하고 입구를 통과합니다. 자국민 우대 입장료 정책 (혹은 외국 관광객 대상 폭리)는 인도 뿐만 아니라 어지간히 유명한 유적지는 다 적용되는 듯 합니다. 아무리 비싸게 받아도 안 보고는 못 배길 걸 알기에 부리는 배짱일까요. 

입장료를 내고 입구를 지나니 타지마할 정면의 게이트가 멀리서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하얀 대리석의 영묘, 타지마할입니다.

인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하얀 진주. 중세 이후로 세계 7대 불가사의를 꼽을 때면 빠지지 않고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건축물입니다. 

하지만 이 화려한 건물은 궁전이 아니라 샤자한 왕이 죽은 아내를 기리기 위해 만든 묘지입니다.

보통 무덤이라고 하면, 피라미드나 진시황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크고 화려하게 지어도 장엄하거나 웅장하다는 느낌이 들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타지마할은 하얀 대리석의 건물 위로 죽은 아내를 위한 왕의 애틋한 사랑이 더해지면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지요.

죽은 왕비를 그리워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공민왕이 노국대장공주를 기리며 현정릉에 묘를 만들때 스케일 좀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으면 한국판 타지마할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소나기가 갑자기 쏟아지면서 영묘 입구에 갇힌 사람들.

아침 일찍 왔는데도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네요.

하지만 입구 주변에 새겨진 코란의 구절과 꽃 문양이 하얀 대리석 바탕 위에서 대조를 이루면서 시선을 빼앗아 가는지라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치 건물을 장식하는 무늬처럼 보이는 코란의 구절은 페르시아 최고의 명필을 초청해서 적어 넣었는데, 무덤에 쓰인 글귀답게 '알라신의 신실한 종인 뭄타즈 왕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기도문'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글씨는 그대로 파낸 다음 검은색 대리석과 재스퍼(벽옥)을 채워넣었습니다.

또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건물 입구에서 봤을 때 원근감으로 인해 위쪽 글귀가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수록 약간 넓어지게 새겼다는 사실입니다. 


거센 빗줄기 너머로 희미하게 보이는 타지마할.

마치 신기루처럼, 혹은 안개 너머로 솟아오르는 궁전을 보는 듯한 몽환적인 느낌입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분위기가 물씬 풍기네요.


혹시 비가 그치지 않으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비가 그치고 해가 뜹니다.

타지마할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하얀 대리석이 날씨와 햇빛의 상태에 따라 다채로운 색깔로 변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비에 젖은 타지마할이 햇빛을 받으니 하얗게 빛나던 대리석의 무늬가 도드라지게 드러납니다.

날이 흐려서 보지는 못했지만 붉은 노을이 질 때는 타지마할도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물든다고 합니다.


완벽한 대칭으로 유명한 타지마할인지라, 이렇게 수면에 비친 반영을 찍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정중앙의 포토존은 약간 지대가 높은지라 반영을 제대로 찍으려면 계단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데, 방문객이 내려가는 걸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듯한 사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히 카메라에 회전LCD가 달려있어서 팔만 내려서 찍었네요.   


타지마할은 하얀 대리석의 영묘가 가장 유명하지만 정문과 좌우의 건물들, 그리고 정원까지 그 안의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더 완벽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흰색의 영묘와 대비되는 붉은 색 사암의 영빈관과 모스크가 세워져 있습니다. 원래 필요한 건물은 모스크 뿐이었는데, 좌우 대칭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똑같은 건물을 하나 더 짓고 왕비의 기일에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한 접객당으로 사용했습니다.

완벽한 대칭을 위해서라면 건물 하나쯤 더 짓는 샤자한 스케일.


2만명의 노동자를 투입해 22년간 (1631~1653)에 걸쳐 완성된 무굴 예술의 결정체입니다.

단지 머릿수만 많이 투입한 게 아니라 그 당시 최고급 기술자들은 인도는 물론 페르시아와 유럽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르고, 건축 자재는 필요하다면 중국과 이집트에서까지 가져왔으며, 대리석은 물론이고 각종 보석과 준보석을 무지막지하게 갈아넣은 결과물입니다.

샤자한 왕이 너무나도 만족한 나머지 이후로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 수 없도록 기술자들의 손목을 자른 걸 보면 이런 역사적인 건축물은 반쯤 미쳐야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영묘 주변에는 네 개의 첨탑이 높이 솟아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오르는 계단처럼 보이기도 하고, 천국에서 내려오는 기도를 받아들이는 통로처럼 보이기도 하는 '미나레트'라고 불리는 첨탑들입니다.

지진이 나도 영묘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미세하게 바깥쪽으로 기울여서 세웠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이 지나며 지반 침하로 인해 붕괴 위험이 커지자 대대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지요. 그래서 요즘 찍은 타지마할 사진들을 보면 다들 미나레트가 공사용 구조물에 둘러싸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사중인 흉한 모습의 타지마할을 보게 되었다고 해서 샤자한 왕과 그의 일꾼들을 원망할 일은 아닙니다. 지반이 무너지고 첨탑이 기울어진 이유는 타지마할 옆의 야무나 강의 수위가 낮아졌기 때문인데 이는 산업화로 인한 환경 파괴가 주요 원인이라고 하니까요. 강가에 타지마할을 세우며 환경역학적인 요소를 고려해서 흑단나무로 기반을 세운 샤자한 왕이 본다면 통탄을 금치 못할 일이지요.


영묘 앞에서 바라본 입구의 모습.

건물 뿐만이 아니라 정원 전체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가 그치고 선선한 날씨에 풀과 나무가 싱싱하게 살아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묘지가 아니라 잘 조성된 공원을 산책하는 느낌도 듭니다.

물론 사람이 워낙 복작거리는지라 한산한 공원 풍경이라기보다는 불꽃축제하는 한강공원이나 벚꽃축제하는 벚나무길 느낌이긴 합니다만.

사방에서는 인도인 가이드들이 열심히 타지마할에 대해 서툰 영어로 설명하는게 들리는데, 왠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주인공 자말은 돈을 벌기 위해 타지마할에서 짝퉁 가이드 노릇을 하는데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썰을 푸는 부분이 압권이죠.

자말: "이곳이 바로 뭄타즈 왕비가 묻힌 곳이예요"

여자 관광객: "그런데 왕비는 왜 죽은거지?"

자말: "교통사고 때문에요. 연쇄추돌 사고였죠."

남자 관광객: "내가 알기론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고 들었는데."

자말: "맞습니다, 선생님. 아이를 낳으러 병원을 가던 중이었거든요."

실제로 뭄타즈 마할은 임신중에 건강이 악화되어 죽었다고 하는데, 14살의 나이에 시집와서 19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았으니 거의 항상 임신중이었던 셈이네요.


영묘 입구의 대리석 조각들. 건물을 장식하는 꽃과 덩굴줄기 문양은 상감기법을 사용해서 새겨넣었습니다. 저 세밀한 무늬가 그냥 그린 게 아니라 대리석을 파낸 다음 검은 대리석이나 각종 보석들로 채워넣은 거지요.

당시 이슬람 국가들은 자연물이나 기하학적 무늬 외에는 우상이라고 여겨서 조각이나 그림으로 만들지 못하는 율법 때문에 각종 식물을 이용해서 만든 무늬가 극도로 발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파리나 줄기, 보석으로 색깔을 채워넣은 꽃의 세부 묘사가 섬세함의 극치를 달립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샤자한 왕과 뭄타즈 왕비의 석관이 놓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뭄타즈 왕비의 관은 완전 대칭인 타지마할에 걸맞게 한가운데 놓여있는데 샤자한 왕의 관은 대칭에서 벗어나 마치 들러리마냥 왕비의 관 옆에 놓여있습니다. 원래 샤자한 왕이 이곳에 안장될 계획이 없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일부에서는 샤자한 왕이 자신을 위해 검은 대리석으로 타지마할과 똑같은 건물을 짓고 두 건물을 잇는 거대한 다리를 만들 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현지 가이드들은 손님들에게 설명하면서 반드시 곁들이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학자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증거나 서류가 전혀 없었다는 점을 들어 일종의 야사로 간주합니다. 샤자한 왕이 공사 끝내고 일꾼들 손목 자른 것부터가 후속작을 만들 생각이 없었다는 반증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구요.

 

입구에서 다시 돌아본 타지마할.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묘사한 것처럼 "영원히 마르지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 시간이 흐를 수록 더 맑고 투명하게 흐르는 눈물. 그것이 바로 타지마할"입니다.

오전 내내 타지마할을 구경하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아그라 성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이곳 역시 샤자한 왕에 의해서 증건된 요새입니다. 원래는 악바르 왕이 수도를 아그라로 옮기면서 짓기 시작했는데, 손자인 샤자한이 타지마할을 지으면서 함께 대대적으로 손을 본 건물이지요. 


여러 출입문 중에서 유일하게 개방된, 남쪽의 아마르 싱 게이트.

타지마할이 하얀 대리석 배경에 검은 대리석을 채워넣었다면 아그라 성은 붉은 색 사암을 바탕으로 흰색 대리석을 채워넣어서 장식했습니다.


군데군데 훼손되긴 했어도 그 화려한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 내부로 들어가는 오르막길. 적들이 침입하면 통로 양쪽의 길게 파인 홈에서 기름이 흘러나오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오르막이라 걷기 힘든데 기름을 뿌려서 미끄럽게 만들고, 그러다가 적들이 뭉쳐서 우왕좌왕하면 벽 위에서 불화살을 날려서 모조리 통구이로 만드는, 그런 방어 전략입니다.


아그라 성 안에서 본 원숭이들.

아무래도 후진국인 인도인지라 여기저기 조심해야 할 게 많은데, 야생동물 역시 그 중 하나입니다.

동물들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개나 소나 원숭이나 사람을 무서워하질 않는데, 소는 그렇다쳐도 바라나시에서 시체 뜯어먹는 들개나 인도 곳곳에 돌아다니는 원숭이들은 요주의 대상입니다.

특히 원숭이들은 가방이나 지갑, 모자 등 사람 물건을 훔쳐갈 뿐 아니라 물거나 할퀴면서 광견병 및 파상풍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병원 시설이 낙후된 인도 시골동네에서 원숭이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여행은 종치는 거죠. 잘못하면 인생 종 칠 수도 있구요.

게다가 성질은 얼마나 더러운지, 어떤 배낭여행객은 호스텔에서 나오는 입구를 원숭이가 막고 앉아서 바나나를 까먹고 있길래 나무 작대기를 줏어다가 땅을 탁탁 치면서 비키라고 했는데, 원숭이가 탁 째려보더니 먹던 바나나를 바닥에 던지고 막 달려오는 바람에 기겁해서 도망쳤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아그라 성의 내부. 회랑을 받치는 기둥과 처마에는 세세한 조각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붉은 사암이 상대적으로 무른 돌이라서 그런지 앙코르와트에서도 그렇고 아그라 성에서도 그렇고 마치 나무에 조각한듯 정교한 무늬가 가득합니다.

 

성벽을 따라 걷다보면 하얀 발코니로 이루어진 탑이 보입니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이 탑의 이름은 무삼만 버즈 (포로의 탑).

샤자한 왕이 말년에 유폐되어 갇혀 지낸 비운의 장소입니다.


타지마할을 세우면서 국고를 탕진한 까닭에 샤자한 왕은 자신의 셋째 아들인 아우랑제브 1세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 이 포로의 탑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왕비가 죽고 나서 아그라성에 화려하게 치장한 궁전을 세워놓고 맨날 넋놓고 타지마할만 보고 있었으니... 어쩌면 폐위당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희대의 로맨티스트라고 해야 할지, 희대의 바보라고 해야할지... 어쩌면 그 둘 사이의 차이가 별로 없는 것일수도 있겠네요. 사랑에 빠지면 바보가 된다는 말도 있으니까요.


가운데 분수에서 물을 뿜어 올리면 통풍 잘되는 대리석 방 안이 시원해지면서 한여름에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감탄을 금치 못했던 건 대리석으로 만든 창문.

창틀만 대리석으로 만든 게 아니라 벌집 모양으로 구멍을 뚫었는데, 무슨 대리석으로 방충망을 만들 기세네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삼만 버즈의 내부지만, 그 넓이가 그렇게 넓지는 않습니다.

그야말로 포로의 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장소.


그리고 포로의 탑 발코니에 서면 야무나 강변에 세워진 타지마할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기리기 위해 세운 아름다운 무덤. 하지만 그 때문에 아들에 의해 왕위에서 쫓겨나고 탑 안에 갇힌 샤자한 왕은 이 풍경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붉은 사암의 성벽 위로 연꽃 모양의 하얀 지붕이 줄지어 서 있는 아그라 성.

샤자한과 뭄타즈 왕비의 사랑, 애틋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타지마할, 그리고 비극적 결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아그라를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탑니다.


버스를 타는데 눈에 띈 야생 공작새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던 귀하신 몸들이 들판에서 무리지어 몰려다니는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이제 인도 여행의 마지막 여정, '핑크시티' 자이푸르로 이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