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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Travel/인도:India

[인도]분홍색 도시, 자이푸르

인도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세 도시를 일컬어 '골든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릅니다. 

델리와 아그라에 이어 황금색 삼각형의 마지막 축을 이루는 곳, 자이푸르에서 인도 여행의 마지막 일정을 시작합니다.

아침부터 방문한 곳은 암베르 성. 자이푸르 외곽에 위치한 요새 겸 왕궁입니다.

골든 트라이앵글의 꼭짓점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요새가 하나씩 있는데, 델리의 붉은 성과 아그라의 아그라 포트, 그리고 자이푸르의 암베르 성입니다.


암베르 성 뒷편에 위치한 자이기르 성. 암베르 성이 완공될 때까지 마하라자(일정 지역을 다스리던 번왕)의 거처로 이용되던 곳입니다.

완공 후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요새인데, 높은 산 꼭대기에 저렇게 벽을 세워놨으니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싸우기 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합니다.

올라가 보면 원숭이들이 가득하다는데, 일정 상 자이기르 성까지 올라갈 시간 여유는 없으므로 패스.

아무래도 볼 거리는 암베르 성에 몰려있으니까요.


암베르 성의 공식 접견실과 왕족의 생활 공간을 나누는 가네샤 폴.

힌두 신화의 코끼리 신인 가네샤의 이름을 따서 지은 곳입니다.

이 곳을 지나면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는 마하라자의 내궁이 나옵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우루루 몰려다니며 구경하는 장소가 되었지만요.


안개 낀 산등성이에 요새의 성벽이 무슨 만리장성마냥 주욱 늘어 서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성벽의 첨탑들이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봉화대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왠지 반지의 제왕 영화에 나왔던 아몬딘의 봉화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차례대로 불이 켜지면 멋있을 듯.


마하라자가 외부인들을 만나던 접견실, 디와니 암.

기둥마다 세밀한 장식이 되어있는데, 워낙 화려한지라 무굴 황제가 방문할 때는 질투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수수한 색으로 덧칠을 해서 위장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코끼리가 그려진 가네샤 폴의 입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 중 하나라는 말이 있는데, 벽을 가득 채운 아름다운 그림들과 세세한 조각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말에 절로 공감이 갑니다. 


내궁으로 들어서면 보이는 실내 정원. 

붉은색과 노란색 돌로 이루어진 건물들만 보다가 녹색의 정원이 나타나니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기분입니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별 모양을 비롯한 기하학적 무늬로 분할한 정원에서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워낙 더운 나라인 만큼 이런 산꼭대기 궁전일수록 물을 공급하는 게 큰 일이었을텐데 성 곳곳에 물이 흐르는 수로를 만들어 냉방 장치로 활용한 것도 모자라서 이렇게 정원을 만들고 분수를 뿜어낼 만큼 풍족하게 물을 썼다니, 인간의 노력으로 안되는 게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드네요. 

 

환락의 궁전, 수크 니와스의 연회장.

무굴 제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마하라자들은 여인들을 모아서 하렘을 만들었는데, 후덥지근하면 껴안고 놀기도 싫어지는지라 곳곳에 물을 흐르게 하고 통풍이 잘 되록 설계한 수크 니와스에서 여인들과 놀았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 얼룩이 생겨 초라한 모습이지만, 가만히 서서 보고 있으면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여인들과 즐기는 왕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주지육림을 즐기겠다는 욕망이 노골적으로 표현된 곳이라서일까요. 


암베르 성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로 손꼽히는 거울 궁전, 쉬시 마할.

내부가 온통 반짝이는 거울과 색유리로 가득합니다.


천장에서부터 벽면 전체가 거울 조각으로 만든 꽃무늬로 도배되어 있습니다.

여행 다니면서 '정말 사진으로 담아내기 힘들다'고 생각한 장소 중의 하나입니다. 걸음을 옮기면서 보이는 빛의 변화, 별빛처럼 반짝이는 거울 조각은 사진으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하니까요.


캄캄한 밤에 촛불 한자루만 켜도 그 빛이 반사되며 방 전체를 환히 밝힌다고 합니다.

나중에 프랑스 여행 갈 기회가 되면 베르사이유 궁전의 거울의 방과 비교해 보기 위해 쉬시마할의 모습과 느낌을 마음 속에 꾹꾹 눌러 기억 해 둡니다.


나올 때는 가네샤 폴의 2층을 들러서 돌아 나옵니다. 

궁궐에 갇힌 왕의 여인들이 이 조그만 창문을 통해 바깥 세상을 구경하기도 하고, 마하라자가 돌아올 때는 이곳에서 꽃을 뿌리기도 했습니다.

새장 속의 행복이라는 게 얼핏 들으면 갑갑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생각하면 고난 가득한 바깥 세상에서 벗어나는 피난처라고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암베르 성의 주요 교통수단인 코끼리. 아무래도 높은 산에 위치한 성인지라 더운 날 아침부터 걸어 올라오기 싫은 손님들은 다들 코끼리를 탑니다.

하지만 '탈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내릴 때는 아니란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 코끼리 운전수들 때문에 저렴한 가격에 코끼리를 탔다고 좋아하던 관광객들이 팁 갖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도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클릭하면 원본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암베르 성의 전경.

햇빛을 받아 빛나는 산 위의 성벽을 보고 있으면 교통의 요지인 라자스탄 지역답게 주변 국가들과 치열하게 싸운 역사가 묻어나는 듯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좋은 수입원이죠. 


자이푸르 시내로 돌아와서 시티 팰리스로 이동합니다.

달의 궁전이라고도 불리는 찬드라 마할은 일부를 관광지로 개방하여 왕족들의 수입원으로 삼고, 나머지는 마하라자의 후손들이 아직도 생활하는 현대의 왕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이푸르 시내로 들어서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색깔이 바로 핑크색입니다.

1900년대에 영국 왕자를 환영하기 위해 건물들을 새로 단장했는데, 수많은 건물들을 다시 칠할만큼 재고가 남아있던 페인트가 핑크색 뿐인지라 건물 벽을 모조리 핑크색으로 칠해버렸다고 하죠.

그 후로 핑크색은 환영의 의미를 담게 되고, 현재는 법으로도 건물 외관을 핑크색으로 유지하도록 하면서 핑크시티의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시티 팰리스 내부의 박물관. 

촬영이 금지되어 있는 관계로 사진은 남기지를 못했는데, 옛날 의복이나 직물 등을 주로 전시해 놨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영어로는 아예 textile gallery (옷감 전시관)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더군요.


시티팰리스에도 왕의 접견실인 디와니카스가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사용된 장소라서 그런지 화려한 샹들리에가 걸려있네요.


시티팰리스의 명물, 거대한 은항아리입니다.

마호싱 2세가 영국을 방문하면서 "나는 성스러운 갠지스 강의 물만 써야겠다"며 가져간 항아리로, 세상에서 가장 큰 은제품으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냥 영국 가면 영국물을 마시던지, 꼭 갠지스 강물을 떠서 가야겠다면 좀 평범한 물통에 담아가던지 할 일이지 이런데 돈을 펑펑 쓰는 마인드를 갖고 있으니 인도가 영국 식민지로 전락한 거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시티 팰리스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박물관도 은항아리도 아닌, 네 개의 문입니다.

광장에서 볼 수 있는 이 네 개의 작은 문들은 사계절을 상징함과 동시에 각각 다른 힌두 신들에게 봉헌된 곳이기도 합니다.

비슈누 신에게 바쳐진 공작새의 문은 가을을 상징합니다.


시바신에게 바쳐진 여름의 상징, 연꽃의 문.


녹색 문은 가네샤 신을 위한 봄의 문입니다. 그리고 사진에는 안 나왔지만 데바 여신을 위한 장미의 문도 있습니다.

각각의 문은 특색있게 꾸며져 있을 뿐 아니라 그 장식이 화려하고 독특해서 굉장히 깊은 인상을 주더라구요.


시티 팰리스 나오는 길에 만난, 피리부는 아저씨.

음악에 맞춰 (실제로는 피리 끝부분의 수실이 움직이는 것을 따라가는 것 같지만)고개를 좌우로 흔들거리는 코브라를 보니 마치 옛날 이야기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온 듯 합니다.

인도 여행 시작할 무렵 봤으면 여정의 서막을 알리는 느낌이라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여행 끝날무렵에 봤네요.


자이푸르에서 마지막으로 본 곳은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입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건물 전체가 통풍이 되도록 만들어진 건물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전면부는 굉장히 큰 5층 건물인데, 막상 뒤쪽으로 이어지지는 않는 독특한 구조입니다.

궁전 내에서만 살아야 했던 여인들이 바깥을 구경하기 위해 만든 건축물인지라 실제 거주 용도보다는 일종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조그만 방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화려한 외관에 비하면 막상 내부는 아무 것도 없이 횡뎅그레한지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이 입장료 내가며 들어가지는 않고, 그냥 외관만 구경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 더운 여름날 시원한 바람과 함께 자이푸르 시내를 구경하며 그 옛날 궁중 여인들의 시선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겠네요.


이렇게 하와마할을 마지막으로 인도에서의 여정도 끝이 납니다.

화려함과 초라함이 공존하는 인도. 힌두교와 불교에 이슬람교까지 곳곳에 수많은 신과 종교가 넘쳐나지만, 카스트 제도와 빈부격차로 인해 정신적 풍요로움과 물질적 빈곤함이 교차하는 나라입니다.

처음 갔던 사람들은 더럽고 불편해서 다시는 안 간다고 치를 떨다가도 시간이 좀 지나면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며 다시 가고싶어진다는 신비한 나라, 인도.

그렇게 몇 번 다니다 보면 사는 게 뭔지, 인생의 목적이 어떤 건지 고민하다가 갑자기 다 내팽겨치고 수행의 길을 떠나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다는 나라.

하지만 명상을 하려고 히말라야나 갠지스 강을 떠도는 수행자가 된 건지, 아니면 마음씨 좋게 생긴 인도인이 건네 준 정체불명의 짜이 한 잔 받아먹다가 의식을 잃고 탈탈 털려 거지가 된 건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무서운 나라이기도 하죠.

그야말로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나라. 며칠 안되는 짧은 여정으로는 수박 겉핥기는 커녕 수박이 어떻게 생긴건지 제대로 보기도 힘들 정도로 볼 것, 경험할 것이 많은 인도.

그렇게 감동과 놀라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번 여행을 끝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