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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Eat/프랑스:France

[프랑스][미슐랭3스타] 뉴욕 장조지: Jean Georges in NYC

세상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중의 하나가 뉴욕이다보니 고급 레스토랑 역시 많이 모여있습니다.

고급 식당의 기준이 서양 중심으로 맞춰진지라 아무래도 프렌치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주류를 이루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특유의 세계화는 클래식 프렌치나 이탈리안 요리보다는 모던, 퓨전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메뉴를 만들어 낸다는 데 특징이 있습니다.

장조지 또한 미슐랭 3스타의 프렌치 레스토랑이지만, 요리 곳곳에서 동양적 풍취가 느껴지는 퓨전 프렌치가 메인입니다.


식당 내부. 약간 캐쥬얼한 메뉴를 서비스하는 누가틴 앳 장조지를 지나면 나타납니다.

두 레스토랑이 한곳에 붙어있는데다가 이름까지 비슷하다보니 누가틴 앳 장조지에서 식사하고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은 이런 곳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가틴은 미슐랭 가이드에 아예 올라와 있지도 않고, 몇 걸음 더 들어가면 나오는 장조지는 미슐랭 3스타인지라 차이가 꽤 큽니다. 임정식 셰프가 서울과 뉴욕 두 곳에서 정식당을 운영하고 있지만 뉴욕 정식당이 미슐랭 2스타라고 해서 서울 정식당까지 미슐랭 레스토랑이 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죠. 

식당 내부는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센트럴 파크의 나무들이 멋진 풍경을 보여줍니다.


기본 빵 셋팅. 빵 바구니 대여섯 종류의 빵을 담아 돌아다니며 서빙을 합니다.

빵의 퀄리티 자체가 엄청 뛰어나다는 생각은 안 드는데, 그 대신 각 빵의 특징을 잘 살린 느낌입니다. 올리브 빵은 올리브 느낌이 강하게 나고, 이탈리안 브레드는 아니스가 듬뿍 들어있고... 이런 식이죠.


어뮤즈 부쉬. 글래스에 담겨 나오는 게 뭔가 싶었는데 먹어보니 된장국입니다. 조그만 두부 슬라이스까지 들어 있어서 놀랐네요.

참치회는 소스에 적셔서 한 입에 먹기 좋고, 아보카도는 아래 깔린 비스킷과 잘 어울립니다.

 

옐로핀 튜나 리본. 

참치 회를 마치 육회처럼 길쭉하게 썰고 꼬아서 리본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강과 와사비가 들어간 소스를 깔고 순무를 얇게 썰어서 참치 위에 올렸습니다. 참치가 꽤나 기름져서인지 진짜 소고기 육회 먹는 느낌이 나네요.

좀 아쉬운 점이라면 리본 묶는 사람이 실력이 없는지 살짝 풀렸다는 거. 제대로 묶은 참치 리본은 아기 주먹마냥 조그맣고 동그랗게 말려야 예쁜데 말이죠.


콜리플라워를 곁들인 조개 관자 요리.

양식 조개가 아니라 바다에서 잠수부들이 잡아온 조개 관자를 굽고 콜리플라워를 올렸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소스가 엄청 맛있네요.


참깨 크랩 토스트.

빵 위에 게살을 듬뿍 올리고 깨를 뿌려 구웠습니다. 장조지에서 유명한 메뉴 중 하나지요.

짭잘하면서도 고소한 게살이 토스트와 잘 어울립니다.

그리고 놀라운 건 옆에 배와 차조기잎을 올렸다는 거. 대다수 서양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수 싫어하듯 깻잎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의외입니다.

장조지가 한국계 미국인과 결혼해서인지 그 요리에도 동양적인 요소가 조금씩 보인다던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뉴욕의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에서 깻잎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버섯을 곁들인 북극 곤들메기 (Arctic Char).

식초 베이스 소스를 써서인지 한 입 먹으면 새콤한 맛이 확 느껴집니다.

옆에 곁들인 배춧잎은 다시마 튀각 만들듯 요리했습니다. 배추로 이런 느낌을 내니까 새롭네요.


메인 랍스터 요리.

메인(main) 디쉬이기도 하고 메인(Maine) 주에서 잡은 랍스터이기도 합니다.

맛이야 뭐... 맛은 있는데 아무래도 르 버나딘 랍스터 때문에 기준이 확 높아져서인지 '그냥 맛있네. 맛있는 랍스터네'라는 느낌이지 '으헝헝 너무 맛있는 랍스터님!'까지는 아닙니다.


트러플을 곁들인 스위트브레드.

스위트브레드라고 하면 무슨 빵 이름 같지만, 실제로는 소의 췌장입니다.

지금까지 먹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처음 먹는 거라면 되도록 고급을 먹어보는게 좋다고 생각하는지라 주문했습니다.

스위트브레드 자체의 맛은 상당히 기름지고 부드러운 게, 곱창과 포아그라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재료 자체는 그렇게 특징이 강하지 않은데, 그러다보니 트러플과 엄청 잘 어울립니다. 

스위트브레드 위에 물밤을 올리고 그 위에 얇게 슬라이스해서 채친 블랙 트러플을 산더미처럼 쌓았는데, 췌장이나 물밤이나 향은 거의 없으면서 고소한 맛을 내다 보니 송로버섯의 강력한 향과 어우러지며 그 자체로 하나의 식재료처럼 어울립니다.

1+1+1을 3이 아니라 10으로 만들어버린 느낌. 


입가심을 위해 나온 샴페인 셔벳. 나중에 집에 가면 샴페인 하나 사서 아이스크림 기계에 돌려서 만들어볼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래 깔린 쿠키는 딱 버터링 쿠키 맛이 나네요.


예약할 때 아내 생일 기념으로 오는 거라고 말해놓으니 이렇게 조그만 케잌을 선물로 줍니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가격이 꽤나 부담스러운지라 생일때나 겨우 갈 수 있습니다. 그 덕에 방문할 때마다 이렇게 생일 선물을 추가로 맛볼 수 있네요. 


디저트, 시트러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시트러스 치즈 케잌, 귤 사바랭(럼주를 넣은 원형 케이크), 자몽 셔벳, 유자 수플레 크레페입니다.

디저트 본연의 역할에 맞게 달달하면서도 하나같이 새콤한 과일맛이 나는 게 좋네요.


디저트, 윈터.

앞쪽부터 차례대로 석류 셔벳, 린저 토르테, 사과 콩피, 절인 배 순입니다.

각각의 메뉴가 견과류, 아이스크림, 셔벳, 초콜릿 등을 곁들여서 나옵니다.

원래 콩피는 기름에 절이는 건데, 여기서는 버터와 캐러맬 소스에 절인 듯 합니다. 

맛은 있는데 아무래도 시트러스가 더 나은 듯 싶네요.


장조지의 명물, 마쉬멜로우.

원래 마쉬멜로우는 마쉬멜로우라는 식물의 추출물로 만드는 건데, 대량 생산을 위해 젤라틴과 전분을 이용해서 만드는 방법이 유행하면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마쉬멜로우가 되었지요.

그래서 이렇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든 오리지널 마쉬멜로우를 먹어보는 건 색다른 기분입니다.


쁘띠 뿌르. 세 종류의 초컬릿과 젤리, 조그만 쿠키가 나옵니다.

너무 배가 불러서 포장해 달라고 하니 종이 박스에 다 담아줍니다. 나중에 집에 와서 하나씩 까먹으니까 맛있더라구요.


계산하고 나오는데 조그만 쇼핑백을 하나 줍니다. 뭔가 봤더니 고급스러운 상자에 들어있는 초콜릿 두 개.

마지막까지 장조지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추억하라는 서비스인 것 같아 기분이 좋네요.

사실 장조지는 미슐랭 3스타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평가가 많이 갈리는 레스토랑입니다.

수많은 손님들을 상대로 수많은 메뉴를 내놓으면서 모든 경우에 홈런을 치는 것은 미슐랭 3스타 할아버지가 와도 불가능한 일이고,

고급 레스토랑은 결국 얼마나 많은 손님에게 홈런까지는 아니더라도 외야 안타 정도는 날릴 수 있을 정도의 요리를 제공하느냐가 관건일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장조지의 메뉴가 좀 호불호가 갈리는 건 사실입니다. 시그니처 메뉴는 다 괜찮은데, 이걸 보조할만한 서브 메뉴가 임팩트가 좀 떨어진달까요.

하지만 분명한 자기 취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구글에서 검색 조금 하면 최적의 메뉴를 찾는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뉴욕의 미슐랭 3스타 중에서 4코스 프리픽스를 제공하는 건 장조지와 르 버나딘 뿐인지라... Per se나 EMP같이 무조건 테이스팅 메뉴를 먹어야 하는 곳을 가려면 예산을 거의 두 배는 잡아야 합니다. Masa는 말할 것도 없구요. 

한 끼 식사에 둘이서 백만원 가까이 쓸 생각이 아니라면, 하지만 뉴욕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을 경험하고 싶다면, 선택지는 장 조지와 르 버나딘 둘 뿐입니다. 그리고 해산물이 아니라 고기 요리가 먹고 싶다면 장 조지를 추천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