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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Eat/프랑스:France

[프랑스]도곡동 페르에피스: Pere et Fils in Seoul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빵집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김영모 베이커리입니다. 제과제빵 명장의 기술과 이름 아래 좋은 재료를 써서 제대로 만든 빵들이 가득한 곳이죠. 지점도 몇 개가 있는데, 그 중 특이한 곳이 바로 도곡점. 제과점 바로 옆에 '페르 에 피스'라는 카페가 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어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뜻의 상호를 붙인 이 카페는, 그 이름처럼 김영모 명장의 아들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대를 이어가며 한가지 일에 몰두하고픈 염원이 담겨있다고나 할까요.




카페 내부는 2층 높이를 터서 만든 덕에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커다란 유리창과 거울, 샹들리에가 어우러지며 상당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일단 주문한 건 밀크티와 오페라. 오페라가 달달하기 때문에 밀크티에는 일부러 설탕을 넣지 않았습니다.


약간 쌉쌀한 맛이 나는 고소한 밀크티에, 커피 시럽이 흠뿍 배어든 케이크 시트와 초코 크림, 커피 크림이 겹겹이 쌓아올려진 오페라가 잘 어울립니다.


오페라는 난이도가 그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아서 꼭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은 케이크인데, 문제는 손이 많이 가는 관계로 아직도 도전을 못 하고 있네요.




페르에피스 바로 옆에는 김영모 제과점이 있습니다. 미국 유학가기 전에 생각하기로는 '서양 사람들은 빵을 주식으로 먹으니 맛난 빵집이 골목마다 많겠지'였는데 막상 가 보니 우리나라 프렌차이즈 베이커리 수준에도 한참 못미치는 빵집만 간간히 보이는 데 놀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대도시에는 명물 빵집이라고 할 만한 장소도 간혹 있지만 빵의 종류나 맛, 케이크의 데코레이션 등 전반적인 수준으로 봤을 때는 의외로 우리나라가 더 낫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맨하탄에 위치한 파리바X트나 뚜레X르 같은 프렌차이즈 베이커리 카페를 가보면 미국 사람들이 줄 서서 사먹는 것도 흔히 볼 수 있지요. 


빵을 잘 굽는 건 아무래도 프랑스가 뛰어나고, 일본은 메이지 유신 때부터 음식 문화와 관련된 것을 주구장창 프랑스에서 배워왔고, 우리나라 제과 제빵은 1~20년 전만 하더라도 "일어를 모르면 제빵 공부를 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일본의 영향을 받았으니... 맛없는 음식으로 유명한 영국에서 재미없기로 유명한 청교도의 후예들이 굽는 빵이 한국사람 성에 안찰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 공장 식빵에 익숙해진 마당에 김영모 제과점을 오니 그야말로 천국입니다.  



김영모 과자점에서 구입한 에그 타르트와 베리 타르트를 들고 들어옵니다.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는 말은 페르 에 피스에서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김영모 과자점 영수증을 보여주면 커피 메뉴는 20% 할인도 해주지요.


게다가 사온 빵 먹을 수 있게 접시 달라고 하면 접시와 포크, 나이프까지 줍니다. 여기에 아메리카노를 곁들여 먹으니 꿀맛. 듣기로는 허형만(만화가 허영만이 아님) 로스터리에서 원두를 공급받는다던데, 확실히 맛있네요.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몇 년 전에는 카페 샤커라토(커피를 쉐이커에 넣고 흔들어서 거품을 낸 메뉴)가 있었는데 만드는 게 힘들어서인지 메뉴판에서 빠져버렸다는 거. 보통은 샤커라토 주문해도 게거품 가득 올라온 커피들이라 실망 가득한데, 페르 에 피스에서는 그야말로 기네스 흑맥주처럼 고운 거품으로 위쪽을 채운 진짜 샤커라토를 먹을 수 있었거든요.




카페 자체 메뉴인 샐러드나 파스타 등도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가격 대 성능비를 생각하면 카페에서는 그냥 마실 거나 주문하고 바로 옆에서 빵을 사 오는 게 좋은 듯 합니다.


마지막으로 먹은 블루베리 빙수. 카페에 앉아서 목마르고 배고플 때마다 뭐 하나씩 시켜먹으며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다 보면 반나절 정도는 금방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왕 시간 보낼거면 수제 레이스 테이블보가 깔린 위로 샹들리에 불빛 비치는 분위기 좋고 빵 맛 좋은 곳에서 보내는 게 좋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