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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Eat/프랑스:France

[프랑스][미슐랭1스타] 뉴욕 불레이: Bouley in NYC

불레이는 2006년 미슐랭 가이드 뉴욕판이 출시된 이래, 중간에 잠시 휴업했던 2009년을 제외하면 무려 10년간 꾸준히 미슐랭 스타를 받아온 레스토랑입니다. 현재 미슐랭 1스타 레스토랑이긴 한데,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ZAGAT에서는 르 버나딘 다음으로 높은 점수를 얻은 식당이고, TripAdvisor는 2015년 미국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불레이를 선정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1991년도에 있었던 뉴요커 7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인생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고 싶은 레스토랑은?"이라는 질문에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 불레이를 더 잘 설명해줄 듯 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과 향기가 확 나면서 벽면 가득히 놓인 사과들이 방문객을 압도합니다. 

이렇게 진열된 사과들은 차례대로 요리에 쓰인다는데, 신선한 사과의 유통기한을 감안하면 이 레스토랑에서 얼마나 많은 양의 사과를 사용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디저트에도 사용되고, 빵에도 넣고, 사과 무스나 거품을 내기도 하고...


불레이의 웨이팅 룸. 다른 일행을 기다리거나 예약 시간까지 시간이 남았을 때 머물 수 있는 장소입니다. 

화장실(-_-;)과 더불어 불레이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한 몫 단단히 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대략 20테이블 정도의,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은 레스토랑입니다. 상당수의 테이블이 2인용이라 실제 손님 수는 더 적을 듯. 

곳곳에 생화가 꽂혀있고, 커다란 풍경화가 왠지 고급스러우면서도 부담스럽지는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기본 빵 셋팅. 갓 구운 빵에 부드러운 버터를 발라서 냠냠. 둥그런 빵은 속에 달콤한 사과 조각이 들어있습니다. 입구에서 봤던 사과가 이렇게 사용된다는 것을 첫 메뉴에서부터 보여줍니다.

식기류는 한 코스 바뀔때마다 웨이터가 와서 걷어가고, 다음 코스에 사용되는 식기로 다시 셋팅해줍니다. 뭘 써야할지 고민할 필요 없이 마음대로 다 써도 되는게 좋네요. 게다가 수많은 식기를 깔아주고, 한 접시 먹고 나면 다 치우고 다른 종류를 좌라락 깔아주는게 왠지 굉장히 고급 서비스를 받는 느낌입니다.


어뮤즈 부쉬로 나온,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두유 아이스트림. 뒤쪽에는 크래커 위에 진한 크림치즈와 캐비어가 듬뿍 올라가 있습니다.

예전에 더 모던(http://40075km.tistory.com/29) 리뷰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뮤즈 부쉬가 주는 레스토랑의 첫인상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불레이의 어뮤즈는 사람 두근거리게 만드는 느낌이네요. 

 

가장 먼저 나온 훈제 연어 블리니 (blini of Scottish smoked salmon). 원래는 러시아식 빵 위에 연어를 얹어 만드는 카나페의 일종을 블리니라고 하는데, 불레이에서는 빵 대신 사과 폼을 굳혀서 사용했습다. 입에 넣자마자 하얀색 폼이 순식간에 녹으면서 사과맛을 내고, 연어의 맛이 뒤를 잇습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 만드는 거지...  


사과 무스에 캐비어를 곁들인 참치 (Big eye tuna). 베르가못 향이 살짝 나면서 신선한 참치회와 캐비어를 함께 먹으니 맛있네요. 오늘은 진짜 캐비어 원없이 먹는구나...


불레이에 오면 빼놓을 수 없는게 바로 이 빵 카트. 불레이는 자체 운영하는 베이커리로도 유명한지라 빵의 퀄리티 역시 어지간한 빵집을 압도합니다. 기본 빵 외에도 서버가 카트를 끌고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여러 종류의 빵을 보여주고, 그 중에 원하는 걸 고르면 잘라서 접시에 올려줍니다. 

친절하게 각각의 빵이 어떤 종류인지, 어떤 재료를 넣어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설명해 주는데... 뭐, 예전에 먹어본 빵이라면 모를까 생전 처음 보는 빵도 있고 해서 선택하기가 대략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종류별로 다 달라고 하기엔 너무 많아요. 흥미 있는 것 두세종류만 먹어도 충분합니다. 식사 하는 중에 한두번 정도 더 오면서 추가로 원하는 빵을 잘라주는데, 요리 다 먹기전에 배부를까봐 "No, thanks"하니까 서버가 막 실망하는 게 재밌습니다.


송로버섯으로 국물을 우려낸 게살 수프, 포치니 플란(Porcini Flan). 큼직한 게살이 한조각 올려져 있고, 그 아래는 잘게 풀어놓은 게살과 트러플로 맛을 낸 다시 국물이 섞여 있습니다. 불레이의 시그니쳐 메뉴 중 하나. 

개인적으론 '엄청 맛있다!' 할 정도는 아닌데, 일단 간이 좀 짜게 되어있는데다가 트러플 향이 약합니다. 그래도 빵이랑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리는 수프.


야생 버섯 모듬 (Forager’s Treasure of Wild Mushrooms). 트러플 드레싱에 여러가지 버섯과 겉면을 살짝 구운 참치 뱃살을 곁들여 나옵니다. 

사과 폼도 그렇고 트러플 드레싱도 그렇고 거품이 많네요.


중간에 서비스로 나온 달걀 요리. 이름이 뭔지 제대로 못 들어서 따로 찾아봤는데, 런치 메뉴에는 당연히 안 올라와 있고, 인터넷으로 검색해봐도 그냥 slow cooked egg at Bouley라고만 뜹니다. 코스 중간에 셔벳 정도 덤으로 나오는 건 많이 봤는데 이렇게 일품요리를 통으로 끼워주는 건 처음이네요.

달걀에 치즈가 듬뿍 들어가서 고소하면서도 짭짤한게 빵이 마구 땡깁니다. 진짜 드레스 코드 있는 고급 레스토랑만 아니었으면 빵 조각으로 핥핥 훑어 먹었을텐데...


메인으로 주문한 포아그라입니다. 원래 간을 별로 안 좋아하는지라 이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나 가끔 시켜먹게 됩니다. 

기름기가 많고 고소한 거위 간이 소스와 잘 어울립니다. 

'뭐, 그래도 완전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라고 생각하는데 서버가 빵 카트 끌고와서는 요청도 하지 않은 빵을 잘라줍니다.

"셰프가 푸아그라는 꼭 이 빵과 함께 먹으래요"라길래 고기에 소스를 듬뿍 묻혀서 빵 위에 얹어 먹었는데... 완전 신세계.

빵 자체에서 나는 풍미가 어우러지면서 과도한 느끼함을 잡아주고 요리를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줍니다.  


레몬과 올리브 소스를 곁들인 양고기 스테이크.

뭐, 그냥 그래요. 맛이 없다는 건 아닌데, 기본에 충실한 양고기 맛.

 

잠시 쉬면서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 한 잔 마시는데 이단 트레이에 설탕만 세 종류를 얹어서 줍니다.

좀 과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맛에 고급 레스토랑 오는거지 라는 생각도 듭니다.


딸기 소스를 곁들인 아마레또 아이스크림 (Treistar Cooks Falls & Santa Barbara Organic Strawberries). 딸기는 제철이 아니라 그런지 그냥저냥~ 반면에 아이스크림은 완전 맛있었네요. 아이스크림은 재료 품질에 따라 맛이 좌우되는데, 좋은 재료를 쓰면 어설픈 부재료 이것저것 넣는 것보다 더 맛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나중에 아마렛 사서 한 번 도전해봐야지 싶은 메뉴입니다. 두유 아이스크림과 함께 머리 속에 기억해 둡니다.


차가운 코코넛 수프 (Chilled Coconut Soup).여러가지 과일 셔벳과 코코넛 소스 위에 아마레또 아이스크림을 얹어서 나옵니다. 개인적으론 딸기보다 이게 더 맛있었던 듯. 


생일 축하 기념으로 서비스로 나온 파인애플 슬라이스. 종잇장처럼 얇게 저며낸 파인애플에 소스를 두르고 레몬 셔벳을 올렸습니다. 산딸기에 꽂힌 초가 포인트 ㅎㅎ

미국 사람들도 엄청 부자가 아닌 이상에야 이런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은 생일이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에나 오게 되는데, 식당에서 이렇게 조그맣게라도 챙겨주면 항상 기분이 좋습니다.


마지막 디저트, 뜨겁게 요리한 배 (Hot Caramelized Anjou Pear).달달하게 요리한 배도 맛있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토피 소스와 비스킷도 맛있습니다. 옆에는 조그만 그릇에 레몬 버베나를 곁들인 아이스크림이 따로 나오는데 사진에선 짤렸네요...-_-;;


발로나 초컬릿과 커피 아이스크림, 초컬릿 무스를 곁들인 초컬릿 수플레. 진한 초컬릿 맛이 연속으로 혀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하얀게 '화이트 커피 클라우드'인데... 커피로 어떻게 하얀색 아이스크림을 만들지?라는 의문이 절로 듭니다. 나중에 알아보니 커피콩을 우유에 담가뒀다가 그 우유로 아이스크림을 만들면 된다고 하네요. 집에 가서 만들어볼 게 점점 늘어납니다.


진짜진짜 마지막 코스, 쁘띠뿌르. 디저트만 두코스를 먹은지라 달다구리가 배속에 가득해서 이건 하나 맛만 보고 나머지는 포장해서 집에 가져왔습니다.

일단 음식만 놓고 보면 미슐랭 1스타가 이해됩니다. 재료의 맛을 극한까지 살렸다거나 혁신적인 요리법을 보여준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프렌치를 기반으로 기본에 충실한 맛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짜거나 달지 않은가 싶기도 한 게, 음식 맛만 놓고 보자면 탑클래스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에 비해 한 수 밀리는게 사실입니다. 요리 퀄리티만 놓고 보자면 미슐랭 1스타의 의미에 걸맞게 '동네 맛집' 수준. 하지만 뉴욕 맨하탄, 그 중에서도 부자 동네인 트라이베카 지역의 동네 맛집으로 1987년부터 지금까지 살아 남았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모든 손님을 압도할만한 수준의 맛은 아니지만, 그래서 호불호가 좀 갈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거나 맛이 있기는 하다는 거죠.

하지만 불레이가 갖는 가장 큰 강점은 기본기 탄탄한 요리에 더해서 뉴욕 고급 레스토랑다운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종업원들의 친절함이 더해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있습니다. 인테리어와 서비스 측면에서는 미슐랭 3스타도 압도하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특히 이러한 점은 뉴요커들 뿐 아니라 뉴욕을 여행하는 사람에게도 매력적인 요소입니다. 엄청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무슨 다도 의식 치르듯이 뽑아낸 커피가 맛은 있겠지만, 뉴요커 분위기를 내자면 스타벅스에서 한 잔 뽑아먹는게 더 어울리듯이 불레이에서의 식사는 '이곳이야말로 뉴요커들의 사랑을 받는 동네 맛집이구나'라고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런치 기준 $55라는, 말도 안되는 비현실적인 가격도 한 몫을 하지요. 5코스 (실제로 나온 건 8코스) 정식이 $55라니 엄청난 가성비입니다. 뉴욕 맨하탄 외식 물가를 감안하면 있을 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