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먹기:Eat/한국:Korea

[한국][미슐랭 2스타] 뉴욕 정식당:Jungsik in NYC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레스토랑, 정식.

정통 한정식이 아니라 퓨전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식 메뉴로 미슐랭 투스타를 받아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그 유명세에 비하면 간판도 없고,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라곤 창문 아래쪽에 조그맣게 박힌 식당 이름이 전부.

그런데 생각해보면 뉴욕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중 상당수가 마치 숨어있는 것 마냥 소박한 외관을 보이는 것 같네요. 

어쩌면 아는 사람만 와도 충분하다는 자신감의 표현일지도. 


레스토랑 내부 모습. 

공연 스케쥴 때문에 가장 빠른 시간에 예약을 하고 가게 오픈하자마자 들어간지라 다른 손님은 아직 아무도 없네요.

테이블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프라이빗 다이닝 공간 제외하면 16테이블 정도?

어설프게 한국식 인테리어를 하지 않고 깔끔한 느낌이 마음에 듭니다. 

간혹 보면 창호문이나 하회탈 등으로 싼티나는 한국식 인테리어를 하는 코리안 레스토랑들이 있는데, 왠지 공항 들어선 외국인에게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강남스타일?"하고 강요하는 느낌인지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뮤즈 부쉬. 타이틀이 '반찬'입니다.

닭튀김 강정, 쌈밥, 김치를 곁들인 칩이나 두부 등등.

고소하고 짭잘한 게 입맛을 돋구는 메뉴들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공기밥 한 그릇 같이 주면 맛있게 뚝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스 위에 올린 캐비어. 아래쪽에는 연어가 깔려있습니다.

캐비어의 산화를 막기 위해 자개 스푼을 따로 주는게 인상깊었습니다. 골고루 얹어서 한 입 먹으면 아주 맛남.

오늘 먹은 것 중 두 번째 내지는 세 번째로 맛있었습니다.


김치가 깔린 조개 관자. 

메뉴 여기저기서 한식 느낌을 내기 위해 노력한 티가 납니다. 그러면서도 외국인 입맛에 맞게 김치 특유의 성질을 좀 죽여서 한국 사람 입맛에는 '김치가 왜 이렇게 싱거워?'라고 느껴질 지도. 


문어 구이.

흔히 문어라고 하면 쫄깃한 식감을 떠올리기 쉬운데, 이 문어는 오랫동안 숙성시킨 문어를 그릴에 구워서 상당히 바삭바삭합니다.

아무래도 정식당에서 메인으로 미는 식감이 바삭함인 듯.


기본 빵 셋팅.

바게트는 괜찮은데 모닝빵은 별로... 너무 흔한 맛이랄까요.


바삭 숭어.

겉은 바삭하고 안쪽은 부드럽게 요리한 생선입니다.

담백하게 맛있음.

 

로열 비빔밥. 개인적으로는 이게 완전 최고였네요.

트러플을 얹은 잡곡잡인데, 밸런스를 절묘하게 맞췄습니다. 

트러플을 좀 과하다 싶게 넣었는데 이게 강한 맛의 김치 잡곡밥과 잘 어우러집니다.

밥그릇이 마치 와인잔처럼 입구가 상대적으로 좁은 모양인데, 이게 버섯의 향을 잡아두는데 도움을 주는지 먹는 내내 코와 입이 동시에 즐거워집니다.

뭐, 트러플을 싫어한다면 완전 기피메뉴가 되겠습니다만...   


유자 소스를 곁들인 오리고기. 주사위 모양의 두부튀김과 줄기콩이 함께 나옵니다.

뭐, 오리고기인 만큼 유자 소스와 궁합도 잘 맞고 다 좋은데...

왜 하필이면 다른 메뉴는 바삭함을 강조했으면서 메인 오리고기만 쫄깃하게 요리했는지 의문입니다.

호불호가 갈리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바삭바삭한 오리껍질이 없어서 아쉬웠네요.


레몬 셔벳. 셔벳 자체는 입가심용 셔벳일 뿐인데 위에 말린 올리브 가루를 살짝 올린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신 맛과 달달한 맛 사이에 아주 살짝 짭잘한 맛이 조화롭게 어울린달까요.


정식당의 시그니쳐 메뉴 중 하나인 돌하르방.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녹차 무스입니다.

아이스크림이나 녹차무스 둘 다 기본에 충실한 맛인데, 데코레이션을 이렇게 해 놓으니 참 색다르네요.


포스트 디저트로 나온 크렘 브륄레.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입니다.

근데 왜 오리고기도 그렇고 크렘 브륄레도 그렇고, 막상 바삭바삭해야 하는 메뉴가 안 바삭한건지는 의문.

표면의 캐러맬화된 설탕이 바삭바삭 부서지는게 특징인 메뉴인데 그냥 부드럽기만 함.


계산서 나오는 줄 알고 지갑꺼내는데 뚜껑 열어보니 쁘띠뿌르.

포스트 디저트까지 나왔으니 끝이겠거니 싶어서 방심하고 있었달까요.

마카롱, 미니 약과, 초컬릿 등등.

쁘띠뿌르까지 다 먹고 나니 뭔가 살짝 모자라다 싶었던 2%까지 다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 새 늦은 저녁. 원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불을 환히 밝히고 있습니다.

정식당을 방문하고 나서 느낀 점은 외국인들에게 익숙한 재료와 조리법을 기본으로 깔고 그 위에 한국의 맛을 한 겹 덮어서 독특한 메뉴를 만들었다는 인상이 강하게 남습니다.

메뉴 개발에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 것은 분명하고, 요리 자체의 퀄리티 또한 충실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맛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도 미슐랭 투스타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죠. 

서양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독특한 느낌의 한국식 맛을 가미해서 버프를 받은 것은 좋은데, 이런 방식은 아무래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기 마련이거든요.

탄탄한 기본으로 낼 수 있는 맛은 미슐랭 원스타 정도가 한계고, 별 두 개를 넘어 세 개까지 넘보려면 독특함 이상의 뭔가가 필요합니다.

그야말로 재료의 맛을 극한까지 끌어내거나, 아니면 1+1을 2가 아니라 10으로 만들어 버리는 혁신적인 조합. 뭐 이런 게 필요하달까요.

서양인들에게 익숙한 메뉴를 제공하는 다른 미슐랭 투스타 레스토랑에 비하면 정식당은 아무래도 요리레벨 자체만 놓고 봤을때는 한 단계 뒤쳐지는 느낌이라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