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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기:Eat/한국:Korea

[한국]역삼 봉우리: Bongwoori in Seoul


한정식 레스토랑 봉우리. 원래 봉우리는 산에서 뾰족 솟아있는 높은 부분을 말하는 것이지만 이 식당에서는 만날 봉, 벗 우, 마을 리를 써서 '벗을 만나는 장소'라는 의미를 함께 쓴다는 점이 재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 객실이 독채인지라 친구 모임보다는 상견례 장소로 더 많이 쓰이는 듯. 유기농 자연식을 기반으로 하면서 가격도 그렇게 세지 않아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듯 합니다.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말린 사과와 대추. 대추는 바싹 말라서 과자처럼 바삭거리고, 사과는 약간 쫀득쫀득한 식감이 남아있는게 신맛과 단맛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입맛을 돋구어 줍니다.

 



서양식으로 치자면 어뮤즈 부쉬쯤에 해당할 듯 한 흑임자죽과 백김치. 백김치 색깔이 예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백련초로 색을 낸 김치입니다.


고소한 검은깨 죽을 먹다가 중간에 백김치로 입가심 한 번 해주고 마저 냠냠.




각종 채소와 버섯불고기의 냉채. 옆에는 고구마 무스 위에 송어와 새싹채소를 무쌈으로 말아서 나왔습니다.


샐러드 대신 모듬 채소 냉채도 좋네요. 불고기도 의외로 냉채에 잘 어울립니다. 


송어 무쌈말이는 양이 너무 적어서 불만. 한 사람당 두 개 씩은 줬으면...ㅠ_ㅠ




해산물 무침, 김치 겉절이, 잡채.


김치 겉절이가 굉장히 맛있습니다. 예전에 미국에 있는 식당에서 김치를 '매운 양념 배추 샐러드'라고 영어로 써 놓은 것을 본 적 있는데, 이 김치는 그런 단순한 설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더 있는 느낌입니다. 그야말로 김치라는 이름에 걸맞다고 할까요.




입가심용 초당 순두부. 뜨끈뜨끈하면서도 고소한 순두부를 훌훌 마시며 다음 메뉴를 기다립니다.




손두부를 곁들인 돼지고기 묵은지찜. 다시 말하면 김치찌개.


김치가 워낙 맛있다보니 다 맛있게 느껴집니다. 묵은지 위에 돼지고기 한 점, 두부 한 조각 올려서 한 입에 냠냠.


봉우리는 허영만 화백의 만화 '식객'에 등장한 것으로도 유명한 집이고, 식객에 등장한 맛집들이 모여있는 식객촌에는 분점도 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식객의 어느 에피소드에서 등장한 식당인지는 잘 모르고 있는데, 그도 그럴것이 김치를 메인으로 다루는 '1122'편에 나오는 수많은 김치 메뉴 중의 하나로 찬조출연할 뿐 실제 식당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만큼 김치 하나는 자신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설립자는 자신을 표현할 때 셰프나 주방장이라는 말 대신 '김치연구가'라는 타이틀을 고수하기도 합니다.



간장과 청양고추로 맛을 낸 대구 강정. 생선 튀김이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한 게 맛있습니다.




메인 메뉴인 떡갈비. 맛이 있긴 한데 아무래도 김치에 비하면 좀 임팩트가 떨어지긴 합니다. 


다른 메뉴들도 다 맛은 있고, 가격을 감안한다면 한 끼에 십만원 넘어가는 한정식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되지만 막 감동하면서 먹게 되는 수준은 아닌 듯.




또 다른 메뉴, 보리굴비. 5천원을 추가하면 떡갈비 대신 먹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조기를 바닷바람에 말려서 만든 굴비보다 더 오래 보관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보리굴비인데, 굴비를 통보리와 함께 재워두면 숙성되면서 안쪽의 기름이 바깥으로 배어나와서 누런 빛을 띄고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리굴비와 함께 나온 밥, 된장국, 그리고... 녹차?


난데없이 녹차가 나오는 데 의아하기도 하지만 좀 더 생각해보면 찬 물에 밥 말아서 한 술 뜨고 그 위에 생선구이 한 점 올려 먹어야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걸 떠올리게 됩니다.


녹차에 밥 말아먹는건 한식보다는 일식에서 흔히 볼 수 있긴 하지만요.



밑반찬도 다 괜찮습니다. 하지만 녹차에 밥 말아서 보리굴비 얹어먹는 맛에 비할 바가 아닌지라 본의 아니게 남기게 되는 듯.




쑥인절미 한 조각과 오미자차를 끝으로 식사를 마칩니다.


메뉴 하나 하나가 다 평균 이상은 하면서도 1인당 38000원이면 제대로 된 한정식집 중에서는 가성비 최강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후식 파트나 플레이팅에 좀 더 신경쓰고 서양사람들 입맛에 맞는 메뉴만 좀 더 개발한다면 미국에서 미슐랭 별 받는 건 문제도 아닐거라는 확신이 들 정도. 아무리 봐도 가성비가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인 뉴욕 정식당(http://40075km.tistory.com/10)보다 괜찮은 것 같아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