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먹기:Eat/미국:U.S.A

[미국]루이스런치 버거, 원조 햄버거에 대한 고찰

조경규, 2013. 오무라이스 잼잼 (http://cartoon.media.daum.net/webtoon/viewer/21264)


자주 보는 음식 만화에서 '진짜 햄버거'라는 타이틀을 달고 등장하는 루이스 런치 햄버거. 


흔히들 "햄버거가 미국 음식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며, 실제로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비롯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맞는 말일수도, 틀린 말일수도 있습니다.


햄버거라는 단어의 어원은 분명 함부르크에서 따왔지만, 여기서의 햄버거는 우리가 평상시에 즐겨먹는 햄버거보다는 오히려 햄버그스테이크 (또는 함박스테이크)에 가까운 모습이기 때문이죠. 따라서 언어학적으로는 햄버거의 원조가 독일에서 왔을지언정 실제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고기 패티와 채소를 빵 사이에 끼운 음식"의 원조로 받아들이기엔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위치한 루이스 런치 레스토랑에서 만든 햄버거를 원조로 여기기도 합니다. 1895년부터 지금까지 4대째 이어져 내려오는 역사와 전통의 레스토랑입니다. 1900년대에 오너쉐프였던 루이스 라센이 손님들의 요청에 따라 간단히 먹을 수 있도록 빵 사이에 고기를 끼워준 것이 햄버거의 시작이라는 거지요.


어찌 보면 샌드위치와도 비슷한 점이 있어 보입니다만, 샌드위치에는 뜨거운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샌드위치 백작을 비롯한 영국 사람들에게 차가운 고기 (냉육 Cold meat: 생햄이나 소시지 등 가열하지 않고 곧바로 먹을 수 있는 고기)와 뜨거운 고기 (스테이크!)는 전혀 다른 음식이었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함부르크에서 건너온 고기 패티를 빵 사이에 끼운 것이 '샌드위치'가 아니라 '햄버거'로 받아들여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뉴헤이븐까지 가려면 못 갈 것도 없지만, 볼거라곤 예일대학교 하나뿐인 동네까지 고생해서 갈 만큼 먹고싶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비슷하게라도 만들어서 먹어보기로 결정.


재료는 아주 간단합니다. 식빵, 갈아놓은 쇠고기, 양파, 토마토, 치즈가 전부.


하지만 심플한 요리일수록 제대로 맛을 내기가 힘든 것도 사실이죠. 루이스 런치 레스토랑에서는 여러 부위의 소고기를 비율 맞춰가며 섞어서 패티를 만든다고 하는데 그럴 실력은 안되니까 그냥 마트에서 파는 걸로 만듭니다.




다른 소스는 전혀 첨가하지 않고 오로지 소금과 후추만 뿌려서 패티를 만듭니다.


나중에 굽다보면 고기 크기가 조금 줄어드는 것을 감안해서 식빵보다 약간 더 큰 크기로 뭉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장인의 손맛! 장인의 손맛!"이라고 주문을 외워가며 고기를 주므르고 팡팡 패대기치며 모양을 잡아줍니다.


사실 이것만 제대로 해도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햄버거보다 한발자국 앞서 나갈 수 있습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패티는 원가를 절감하고 기계에 무리를 주지 않기 위해 고기 외의 재료도 이것저것 들어가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자연적으로 소고기에 붙어있는 지방이 아니라 쇠기름을 추가로 부어준다거나, 보존제를 첨가한다거나, 심한 경우엔 저급 고기맛을 감추기 위해 합성 향료를 넣는다거나...




원래는 난로처럼 생긴 그릴(이미지 링크)에 구워줘야 하지만, 그런 그릴은 없는 관계로 그냥 집에 있는 웨버 그릴에 구워줍니다.


다행히 생선구이용 석쇠는 있네요. 


양파를 썰어서 고기와 함께 석쇠에 끼우고 뜨거운 숯 위에 지글지글 구워줍니다. 




100% 쇠고기 패티인 만큼 화력을 빵빵하게 해서 단번에 미디엄으로 구워냅니다. 


뒷마당에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고기를 굽고 있으니 평화롭네요...




고기가 다 구워지면 식빵을 토스트하고 녹인 치즈를 듬뿍 발라줍니다.


따로 소스가 안들어가는지라 짭짤한 치즈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죠. 


루이스 런치 레스토랑에서는 소스 없이 좋은 재료만으로 맛을 내는 이 조합을 워낙 자랑스럽게 여기는 관계로 "케첩 달라는 말 하지 말 것"이라는 주의 표지판을 세워놓았을 정도입니다.




치즈를 바른 빵 위에 고기, 그 위에 양파, 마지막으로 토마토, 그리고 나머지 빵 한 장을 얹어주면 루이스 런치 버전 오리지널 햄버거 완성입니다.


치즈를 바른 부분과 고기 패티가 만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육즙이 빵을 적시지 않거든요.


부족한 솜씨로 대충 흉내내서 만든 햄버거지만 굉장히 맛있습니다. 거의 BLT 샌드위치에 필적하는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물론 집에서 쉽게 쉽게 만들어 먹기에는 좀 번거로운 메뉴입니다만, 한 번 정도 시도할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이게 정말로 "원조" 햄버거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햄버거 패티만큼이나 중요한 요소가 번이라고 불리는 햄버거빵이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이 둥근 모양의 햄버거빵을 만나기 위해서는 1920년대에 미국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선구자인 '화이트 캐슬'이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산업사회와 자본주의의 결과물인 공격형 프랜차이즈 패스트 푸드를 햄버거의 요소로 생각한다면 1950년대에 레이 크록이 맥도날드 형제로부터 식당을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제국을 건설하기 시작한 이후부터 진정한 의미의 햄버거 역사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테구요.


이런 이유로 어떠한 조리법이나 음식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찾아내는 것은 참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요리라는 건 결국 다양한 재료와 조리법, 심지어는 여러 나라의 역사와 문화까지 녹아들어있는지라 그 중 어느 것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원조를 다르게 정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유래야 어찌되었건 맛만 좋으면 된다지만... 그래도 요리의 역사나 배경에 대한 지식 역시 맛을 즐기는 데 또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으니까요.